우리가 살다 보면 선물을 주기도하고 받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좀 부담스러운 선물도 있어서 한 동안 마음이 편치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선물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다 기분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농협을 찾아 주시는 고객 분들께 감사의 표시로 조그마한 사은품을 주면 그렇게 고마워하신다. 아마 나가시면서 열 번 정도는 ‘고맙다’고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곤 다음번에 오실 땐 농사지으신 상추며, 토마토며 한 봉지 들고 오셔서는 슬그머니 놓고 가신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제 성의니 흉보지 마시고 드셔유”하시며 급하게 종종걸음 치신다. 아마 이런 것을 정이라고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작년 이맘때이다.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이 어머니께서 만드신 미숫가루라며 조그마한 봉지를 같고 왔다. 봉지를 열어 보니 고소한 냄새가 방안에 진동한다.

“어머니께서 보리농사도 지으셔요?” “예, 연세도 많고 자주 아프셔서 이젠 그만 두라고 해도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니. 미숫가루를 더 많이 드려야 하는데 원래 적은 양이라…” “아니요, 정말 귀한 선물 받았어요. 어머니께서 고생하신 것을 내가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하면서 다시 만져보니 따뜻한 어머니의 정이 온몸으로 퍼져왔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 여직원의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다. 병실에 가 보니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의 노인 한분이 힘없이 침대에 누워계셨다.

인기척에 눈을 뜨신 노인이 일어나려고 하시기에 누워계시라고 해도 결국 일어나 앉으셨다. 손을 잡아 보니 뼈만 앙상하시다. 이 손으로 농사를 지으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힘도 없으시며 웬 농사를 그리 많이 지으셔요? 이젠 쉬셔야지요”하며 위로를 들이자, “아이구, 저 보고 쉬라니요, 숨을 쉬면 움직여야지, 결국 농사가 끝나고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병이 찾아왔네요. 어서 죽어야 하는데, 괜스레 자식들 돈 들어가고, 바쁜 사람들 찾아오게 하니 죄송스러워서…”하시며 숨을 가쁘게 내리쉬셨다.

병원에 더 오래 있어야 환자에게 힘만 들게 하는 것 같아 조그마한 성의 표시를 하고 돌아서니 “아이고 이러시면 안 되는데” 하시며 한 손에 봉투를 드시곤 손사래를 치셨다. 그 분에게는 나의 조그마한 선물까지도 부담스러웠는가 보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중국 상해에서 취직하기로 결정하고 비자 관계로 잠시 집에 들렸다.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데 취직을 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려운 세파를 뚫고 가야할 일들이 생각나 아버지로서 걱정이 되었다.

반면 아내는 딸아이로부터 가방과 용돈을 받더니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꽃이 만발하다.

“여보, 딸아이가 준 용돈 나는 아까워서 못쓰겠는데, 당신은 그리도 좋소?”

“그럼요, 내가 배 아파 낳은 딸을 지금까지 키우고 가르쳐서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는데, 그럼 당신은 안 기뻐요?”하며 오히려 나에게 반문을 한다.

“아니 기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 것이 벌어 온 돈이기에 쓰기에 아깝다는 것이지.”

“그럼 당신은 저축하시구려. 나는 쓸데가 있으니깐”하며 딸아이가 선물한 새 가방을 들어 보기도 하고 메어 보기도 하며 부산을 떤다.

오늘 아침 딸아이가 첫 월급으로 선물한 파란색 넥타이를 맺다. 셔츠와 양복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거울 속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는 선물의 기쁨보다는 딸아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인 것 같다.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됐으니 좋은 배필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고., 그럼 결국 내 곁을 떠나야 하는데 그것이 인생이요 삶이건만 그래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것이 자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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