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사건으로 무너진 보수당 내각

마침내 1963년 9월 25일 데닝경은 “존 프로퓨모 추문사건에 있어 국가기밀이 누설된 혐의는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데닝 보고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데닝경을 위원장으로 한 조사위원회는 우선 전 육군장관 프로퓨모씨의 성(性)추문 사건을 조사함에 있어 주로 소련대사관 정보장교 이바노프 대령에게 관심을 두었으며, 둘째로 그의 친구인 접골전문의사 스테펀 워드씨에게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비밀이 누설되었다고 믿을 만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프로퓨모씨는 단순히 크리스틴 킬러 양에게 미혹되어 그녀와의 성적 접촉을 바랬기 때문에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하였다. 프로퓨모씨와 이바노프씨는 킬러양의 아파트에서 마주친 일이 없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서로 엇갈려서 킬러 양을 방문하였다. 킬러양은 프로퓨모씨에게 비밀 정보를 요구한 일이 결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던 이바노프는 사건이 터진 후 본국 소환 형식으로 이미 영국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킬러 사건의 여진은 그후에도 계속되어 이듬해인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에 대패하였다. 사건은 결국 보수당 내각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요화(妖花)가 되기까지

크리스틴 킬러는 런던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화차를 개조한 트레일러 집에서 의붓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소녀시절을 보냈다. 이때 킬러는 신문배달과 아이보기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신문배달로 받는 돈은 1주일에 16실링 정도였다. 15살이 되자 킬러의 어머니는 그녀를 직업소개소에 데리고 가 일거리를 찾아주었다. 주로 식당의 웨이트레스 등 재미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다가 16세가 되었을 때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 받았다. 런던의 어느 양장점에서 모델노릇을 하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런던의 그 양장점으로 가서 면접에 응했다.

늘씬한 몸매와 미모덕에 킬러는 취직이 되었다. 킬러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참으로 기분이 좋았어요. 생각해 보세요. 모델이라니까요, 내가 모델이 됐어요.”

킬러가 의사인 워드박사를 만나게 된 것은 그뒤 런던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호스테스로 일하면서였다.

당시 18세로 한껏 피어나는 예쁜 용모였던 그녀는 호스테스로 몇군데 카바레를 전전하는 동안 상류사회의 명사들과 사귀게 되었다.

워드 박사와의 기묘한 관계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워드박사는 접골전문 의사이면서 그림도 그려 전시회를 여는 등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색다른 취미와 재주가 있었다.

하류사회에서 태어나 가난에 쪼들리는 처녀들 가운데 인물이 근사한 처녀를 찾아내어 고급 사교계에 등장시키는 솜씨가 그것이었다.

킬러는 당시 영화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워드는 킬러를 영화배우로 만들어 보려고 영화계 인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 일은 워드박사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킬러도 그녀의 꿈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느낀 후 워드가 시키는 대로 고급 사교계의 요화(妖花)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

워드박사가 킬러를 고급 사교계에 등장시킨후 그녀를 프로퓨모 장관에게 처음 소개한 것은 1961년 7월 7일 워드가 빌려쓰고 있던 영국의 명문 귀족 윌리엄 월돌프 아스토어경(卿)의 수영장이 딸려있는 클리브덴 별장에서였다.

프로퓨모는 당시 워드의 초청으로 연극배우 출신인 부인 발레리 홉슨과 함께 주말을 보내기 위해 그곳에 갔다. 이때 킬러는 워드를 도와 손님을 맞는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며칠 후 프로퓨모는 워드의 주선으로 킬러를 워드의 아파트에서 다시 만나 동침했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킬러에게 빠져든 프로퓨모는 수시로 킬러를 찾아간 것은 물론 그녀를 데리고 드라이브까지 하는 등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는 심지어 킬러를 육군성에 데려와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각종 기록에 보면 프로퓨모가 그렇게 킬러에게 푹 빠져 지낸 기간은 5주 정도였다.

사건 발생 후 킬러는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사건의 위증죄로 9개월간 복역했다. 그리고 6년 후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지면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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