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사건의 전모

▲ 1963년 법정에 출두하는 크리스틴 킬러의 모습.

‘프로퓨모-킬러 사건’, 간단히 ‘킬러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섹스 스캔들이다. 사건의 내용을 2회에 걸쳐 간추려 소개한다.

런던 정가의 이상한 소문

1963년 3월 초, 런던 정가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보수당 소속인 존 프로퓨모 육군장관이 붉은 머리의 이름난 콜걸 크리스틴 킬러와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정가와 관가에 파다하게 퍼졌다. 다음해 있을 선거를 앞두고 여당을 공격할 자료를 찾고 있던 노동당은 때마침 만난 이 호재를 의회에서 따지기로 하였다.

그러나 3월 22일, 하원에 불려나온 프로퓨모 장관은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프로퓨모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사교 클럽에서 킬러양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1961년 7월부터 12월 사이에 워드박사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러 워드박사의 아파트에 갔을 때 킬러양을 5~6차례 정도 본 적이 있습니다. 킬러양과 저는 그저 호감을 가진 사이였을 뿐입니다. 킬러양과는 낯익은 처지 이상의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습니다.”

이어 보수당 당수인 모리스 해롤드 맥밀란 수상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수상은 “프로퓨모  장관이 킬러양과 좋지 못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옹호하였다. 야당은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대지 못했다. 그 후 소문은 잠시 수그러드는 듯 하였다.

약 50일 후인 같은해 5월, 매춘알선 등의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 워드박사(Stephen Ward, 당시 43세, 프로퓨모에게 킬러를 소개한 뚜쟁이 접골전문의사)는 맥밀란 수상과 외무성, 그리고 노동당 당수인 해롤드 윌슨에게 각각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서 “프로퓨모가 하원에서 증언한 것은 거짓이며 그는 킬러양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킬러의 친구인 마릴린 라이스 데이비드 양은 신문사에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떠벌렸다.

“저는 여러번 보았어요. 프로퓨모가 크리스틴의 방에서 나오면 이바노프가 그 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참 우스운 일이죠”

데이비드양은 킬러와 한 아파트에 살며 함께 고급 사교 파티에 전문적으로 나가는 친구였다.

워드박사의 편지와 데이비드양의 발설 내용은 연일 신문과 방송에 대서특필 되었다. 언론은 프로퓨모 육군장군이 고급 콜걸 킬러와 깊은 사이이며 킬러는 주영 소련대사관의 해군무관 이바노프와도 애인 관계라고 써댔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언론은 킬러를 ‘악의 꽃’으로 지칭했다. 특히 이바노프가 소련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킬러를 통한 군사기밀 유출 의혹이 증폭되었다.

옥죄어 오는 상황 속에서 프로퓨모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6월 5일, 그는 맥밀란 수상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고 장관직과 의원직에서 사임하였다. 그는 편지에서 “본인은 본인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하고, “이같은 허위 진술은 참으로 잘못된 일로서 거짓말을 한데 대해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퓨모는 또, “킬러가 이바노프 대령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본인이 국가 기밀을 그녀에게 누설한 일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명문 옥스포드 대학을 나와 25세에 하원의원이 된 후 승승장구 출세 가도를 달려오면서 장래 수상감으로까지 거론되던 프로퓨모의 정치 생애는 킬러와의 관계로 인하여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정계를 떠난 프로퓨모는 한동안 가족과 함께 행방을 감췄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파는 맥밀란 정부를 밑으로부터 흔들어 놓았다.

한편 맥밀란 정부는 증폭되고 있는 군사기밀 유출 의혹에 대한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저명한 판사인 데닝경(卿)을 위원장으로 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당사자인 프로퓨모와 킬러 외에 맥밀란 수상, 장관 8명, 의원 20여명, 워드박사 등 도합 160명이 이 사건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증인으로 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위원회의 조사는 약 3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