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오브 더 월드’에 실렸던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킬러 사진(1969년)

‘프로퓨모-킬러 사건’은 고급 콜걸인 크리스틴 킬러(Christine Keeler·1963년 당시 21세)가 영국 국방장관이었던 존 프로퓨모(John Profumo·당시 48세)와 런던 주재 소련대사관 해군 무관이었던 예브게니 이바노프(Yevgeni Ibanov·당시 37세)와 동시에 애인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맥밀란 수상의 보수당 정권을 뒤흔든 사건이다. 킬러를 통해 영국과 나토(NATO)의 군사기밀이 소련측에 흘러 갔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이 사건은 전 세계의 언론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사건 발생 6년후인 1969년 9월 어느 날, 영국 최대의 일요신문인 ‘뉴스 오브 더 월드’지가 ‘나의 회고록’이란 제목으로 킬러의 회고록을 연재한다는 사고(社告)를 냈다.

당시 이 신문의 1회 발행부수는 65만부 정도였지만 돌려보는 독자가 6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인기 대중지였다. 이 신문은 킬러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도 재빨리 킬러의 수기를 연재해 부수를 늘린 일이 있었다. 6년만에 다시 회고록을 연재하기로 결정한 것은 새로운 사주(社主)인 호주 출신 신문왕 루퍼트 머독의 치밀한 상업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이로 인해 영국사회에서 또 다시 ‘프로퓨모-킬러 사건’이 재론 되었으며, 신문 연재에 대해 찬반 논쟁이 들끓었다.

반대론자들은 주로 상류사회의 인사들이었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한결같이 옛 상처를 다시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다. 회고록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안되며 선량한 풍속을 해칠뿐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당 원내총무 더글라스 하우튼 씨는 “프로퓨모씨는 그 사건이 있은 후 (모든 공직에서 떠나) 사회사업에 전념하고 있으며 훌륭한 업적도 남기고 있다. 그를 다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귀족들은 물론 존 히닌 추기경도 나서서 ‘뉴스 오브 더 월드’지의 처사를 비난했다.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는 킬러와의 인터뷰를 계획했다가 취소했으며 상업텔레비전인 ITV는 ‘뉴스 오브 더 월드’지가 의뢰한 ‘킬러 회고록’의 광고방송을 거부했다.

찬성하는 쪽도 만만치 않았다. 회고록 게재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상류층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보수계의 일요신문 ‘선데이 텔리그라프’지는 “킬러회고록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는 사회에서 한 여인을 놓고 귀족과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들이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못된다”며 언론자유론을 들어 회고록을 옹호했다.

킬러 자신은 회고록을 쓰게 된 동기가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투옥되게 된 일련의 배후 사정을 밝히는데 있다고 말하고 자기를 비난하는 이들은 사건의 내용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뉴스 오브 더 월드’지도 1면 톱 기사로 일부의 비난에 대한 반론을 전개했다.

“킬러양은 프로퓨모나 이바노프를 파멸시킨 악녀라고 비난을 받아왔으나 당시 그녀는 겨우 21세된 여인이었다. 그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운명이 시키는 대로 중년남자들의 노리개가 되었었다. 그야말로 이 사건의 희생자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운한 운명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젊은 여인이 이제 겨우 인생의 의미에 눈을 떠서 자신의 입장에서 그 사건에 대해 자기 나름의 설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닐 수 없다.”

찬반 논란 속에 회고록은 연재되기 시작했다. 일요일인 1969년 9월 28일 1면에 킬러의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사진과 함께 1회분의 회고록이 실렸다. “킬러양은 사건의 희생자다. 그녀도 말할 권리가 있다”는 제목의 회고록을 옹호하는 사설도 함께 나왔다. 신문은 나오기가 무섭게 날개돋힌듯 팔려나갔다. 그 덕에 발행부수가 65만부에서 80만부로 껑충 뛰어 올라 신문사에 커다란 수입을 안겨주었다.

한편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그 후 꾸준히 성장을 계속해 지난해 2010년 10월에는 판매부수가 280만부를 넘어섰다. 이 신문은 종간호에서 ‘168년만에 우리는 750만 독자(7.5million Readers)에게 슬프지만 자랑스런 작별을 고한다’고 썼다. ‘750만 독자’의 근거를 알 수는 없지만, 온라인 독자 등을 포함한 숫자인 듯 하다.

그동안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머독 소유의 대중 일간지 ‘더 선’의 일요판 역할을 해왔는데, ‘뉴스 오브 더 월드’ 대신 ‘더 선’의 일요판을 발행함으로써 그 공간을 메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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