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편제’ 촬영현장 언덕에서 내려다 본 바다쪽 풍경.

영화에서 유봉은 죽기 전에 송화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네 눈을 멀게 만들었다.”

(다소곳이 앉아있던 송화가 고개를 끄덕 끄덕한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 용서도 했냐?”

(이 대목에서는 묵묵부답)

소설에서는 “송화가 아비를 대하는 거동 같은 것을 보아 제 아비를 용서하고 있었는지 맘 속으로 짐작해 볼 수 없었느냐?”는 동호의 물음에 이들 부녀와 함께 지낸 적이 있는 세월네가 이렇게 답한다.

“행동거지로만 본다면야 말도 없고 원망도 없었으니 용서를 한 것 같아 보였지요. 더구나 소리를 좀 안다 하는 사람들까지도 그걸 외려 당연하고 장한 일로 여기고들 있었으니까요.”

시각은 가장 즐거운 축복

시각을 빼앗아 소리를 빛낸다는 엉뚱한 발상(작가의 상상일 수도 있고,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을 소설화하고 영화화한 것이 ‘서편제’라고 할 수 있다. 매우 비상식적인 그것을 극적인 요소라고 하는 것인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사회 사업가로, 문필가로 일생을 보낸 위대한 여성 헬렌 켈러(미국·1880~1968)여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제목의 수필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단언하건대 모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축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각장애야 말로 장애 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라는 의미다.

헬렌 켈러의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서편제’의 아비 유봉은 -만약 완벽한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딸을 장님으로 만들었다면-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인 시각을 빼앗아 딸의 목청을 가꾸겠다고 한 무식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굳이 헬렌 켈러의 말을 빌어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이 인륜에 어긋나는 짓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설정처럼 유봉이 그런 생각에서 그런 짓을 했다면 그것은 중세 유럽의 카스트라토(castrato)만큼도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중세 유럽의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전의 소년을 거세시켜 변성기를 막음으로써 여성의 음역을 내게 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합창단원이 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의 음역을 내게 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했다는 것이다. 카스트라토의 전성기는 18세기였는데,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점령해 이를 금지할때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트라토로 만들기 위해 해마다 6천여명의 소년이 거세를 당했다고 한다.

카스트라토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을 잘못 해석해 생겨난 비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영화 ‘파리넬리’는 중세 유럽의 유명한 카스트라토의 이야기다. 작곡가 하이든도 어려서 성가대에서 노래를 잘 불러 카스트라토가 될 뻔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거세당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청산도는 전라남도 완도에서 배로 45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있다. 차량을 수십대 실을 수 있는 카 페리가 수시로 드나드는 작지 않은 섬이다. 이 섬이 유명 관광지가 된데는 ‘서편제’ 촬영지라는 것이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봉과 송화,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면서 내려오는 언덕길은 그 뒤 포장을 했다가 관광객들의 항의로 포장을 다시 벗겨내고 황톳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언덕길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쪽 풍광 또한 일품이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