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화와 동호가 아비 유봉 앞에서 소리를 연습하는 ‘서편제’의 한 장면. (왼쪽) 서편제의 이 장면을 찍은 청산도 세트장의 최근 모습. 실물 크기의 인형이 앉아있다.

송화의 소리와 동호의 북장단이 어우러진 판소리가 두 사람의 소리없는 눈물 속에 한동안 이어진다. 다음날 아침 동호는 아무 말 없이 서울로 돌아간다. 송화는 노래를 부르면서 북장단을 잡은 사람이 오래 전에 아비 곁에서 달아난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 역시도 아는 체 하지 않는다. 그리곤 주막의 인정 많은 주인 남자(최종원)에게 ‘동생을 만나 한(恨)을 풀었다’고 말한다.

‘서편제’는 1993년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임권택 감독, 김명곤 각색에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이 주연이다. 지금은 관객 500만, 천만 돌파가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개봉 후 상영 196일 동안 서울에서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여 큰 뉴스가 됐다. 임권택 감독이 13년후 서편제의 속편으로 제작한 것이 ‘천년학’이다. ‘천년학’은 그의 100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서편제’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아비가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소리꾼으로 키우려는 딸이 소리를 잘 내도록 하기 위해, 즉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아비가 그런 몹쓸 짓을 하는 것처럼 나온다. 눈을 뺏으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쪽으로 옮겨가서 눈빛 대신 사람의 목청소리를 비상하게 한다는 얘기가 있단다. 또 좋은 소리를 내게 하려면 소리를 내는 사람의 가슴에 말 못할 한을 심어줘야 한다는 건데, 영화니까 그렇지, 사람으로서 차마 해선 안 될 잔인한 짓이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에 구속감이다.

고의로 딸의 눈을 멀게 하는 비정한 아비

눈을 멀게 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소설과 영화에 다소 차이가 있다. 소설은 제3자가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형식으로 송화가 눈을 잃게 된 사연을 전한다. 딸이 잠 든 사이 애비가 청강수(염산)를 눈에 찍어 넣어 눈을 멀게 한 것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아비 유봉이 고의로 딸을 장님으로 만든다. 유봉이 ‘몸을 보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면서 송화에게 보약을 다려주면서 눈을 멀게 하는 약재를 약탕기에 털어 넣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유봉은 사전에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한약을 다릴 때 부자를 과하게 넣으면 눈이 먼다는데….”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를 지나가는 말 하듯 슬쩍 묻는다. 그리고 나서 그 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한편 어려서 아비 곁에서 달아났던 아들 동호는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누나인 송화를 찾아 나섰다가 소리재에서 만난 주막 여인 세월네로부터 송화가 아비 때문에 장님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세월네는 동호에게 ‘소리꾼의 가슴에 한을 심어주기 위해서…’아비가 한 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전한다.

동호는 주막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 주려 해서 심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 고인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노인은 아마 그 여자의 소리보다 자식년이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해 두고 싶은 생각이 앞섰을지도 모르는 일일 거네.”

동호가 도망간 후 송화마저 달아날까봐 그런 짓을 했을 것이란 뜻이다.

영화는 이청준의 8편으로 구성된 연작 단편 ‘남도사람’ 시리즈 중 1편의 ‘서편제’를 제목으로 했고, 내용은 1편 ‘서편제’와 2편 ‘소리의 빛’ 내용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어쨌든 남도사람 2편 ‘소리의 빛’에서는, “눈을 죽이고 나니까 그 죽은 눈빛이 다시 목청으로 살아났던지 여인의 소리는 윤택해지고, 그 덕분에 부녀는 오라비가 곁을 떠나고 난 다음에도 힘들이지 않고 이 고을 저 고을로 구걸 유랑을 계속해 다닐 수가 있었다”고 그 뒤 부녀의 상황을 설명한다. 또 “아비가 환갑길에 들어선 노인이 되어 죽으면서, 비로소 여인이 모르고 있던 몇 가지 비밀 -여인과 그녀의 달아난 오라비 사이의 어정쩡한 인륜관계 하며 잠든 딸에게 청강수를 찍어 넣어 그녀의 눈을 멀게 한 비정스런 아비의 업과들을 눈물로 사죄하고 갔다”고 그려 넣었다.

다시 청산도. 서편제의 그 유명 장면을 찍은 촬영지 언덕 길에 두 번 갔다. 도착 직후 갔고 이튿날 아침에 한 번 더 갔다. 이 길에 자꾸 눈길이 간 이유가 무얼까? 그 길에서 아비, 동생과 더불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덩실덩실 추며 흥겨워하던 송화가 그 후 길잡이와 지팡이에 의지하는 가련한 봉사의 신세가 된 상반된 장면이 시각 속에 오버랩 됐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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