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편제’속에서 유봉과 오누이가 길을 가다가 흥겹게 춤을 추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왼쪽) 촬영 현장의 현재 모습. 당시의 풍경 그대로다.

6월 중순, 청산도(전라남도 완도군)에 간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영화 ‘서편제’(1993년 개봉)의 촬영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의 서편제 촬영장소는 두 곳이다. 정처없이 떠도는 소리꾼 아버지와 딸과 아들 세사람이 나지막한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다가 흥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면을 찍은 곳과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아비 유봉이 오누이(송화와 동호)에게 ‘진도아리랑’을 가르치는 초가집이다.

춤추는 장면을 찍은 장소는 항구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있고 초가집 세트장은 바로 아래 마을 안에 있다.

과거에는 마을의 집들이 거의 초가지붕이었는데 요즘엔 모두 주황 또는 파랑색의 개량지붕으로 바뀌었다. 초가집은 이제 세트장 한 곳 뿐이다. 세트장도 실제 사람이 살던 곳 같았다.

세사람이 판소리를 하며 걸어 내려오던 구부러진 언덕길은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이다. 청산도의 중요한 관광자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촬영장소임을 알리는 세가지가 있다. 영화 ‘서편제’의 장면을 찍어 설명해 놓은 보드판과 판소리의 장단을 맞추는 북과 채를 상징하는 나무 조형물과 둥근 돌로 만든 촬영현장 표지석이다.

서편제 촬영현장 부근 풍경에서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현장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근년에 지어진 TV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다. 가건물치고는 단단하게 보였는데, 지금도 사람이 기거하는 듯 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

‘서편제’는 이청준의 동명(同名)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한국인의 한 정서를 잘 담아낸 명화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1960년 전라남도 보성군의 소릿재. 청년 동호(김규철)는 어려서 자신이 아비 유봉(김명곤) 곁에서 달아나면서 헤어진 이복누나 송화(오정해)를 찾아 나섰다가 보성의 소릿재에 있는 한 주막에 묵게 된다.

이 주막의 주인인 세월네는 동호의 요청에 따라 판소리를 하고 동호는 직접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춘다. 여기에서 동호는 세월네로부터 송화가 장님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시작된다.

이 어린 시절에 소리꾼 아비로부터 소리와 북을 배우는 장면을 찍은 곳이 앞에 말한 청산도의 초가집 세트장이다. 이 동네 위 언덕길에서 유봉과 오누이가 한바탕 신명나게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이 장면은 임권택 감독이 5분 30초나 되는 롱 테이크(Long Take: 커트 없이 길게 찍는 촬영 기법)로 찍었다하여 유명하다. 요즘 영화에서는 롱 테이크를 잘 쓰지 않는다. 임권택 감독도 원래는 그렇게 길게 찍을 계획이 아니었으나 장소가 너무 좋아 그렇게 바꿨다고 한다.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영화속의 오누이는 유봉의 아들 딸이라곤 해도 핏줄로는 세 사람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송화는 부모 잃은 아이를 유봉이 데려다 소리꾼으로 만들려고 키운 것이고 송화보다 나이가 어린 아들 동호는 어쩌다 만나 자신의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죽은 어떤 과부의 아들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동호는 마침내 어느 주막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누나 송화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지 않은 채 송화에게 노래를 청하고 자신은 북을 잡는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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