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6·25격전지를 가다]- 연기군 개미고개

▲ 충남 연기군 전동면 청람리(개미고개)에 설치된 추모비 모습.

온 군민 가슴속에 아픔으로 남아있는 6·25전쟁이 발발한지 61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연기군도 6·25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전투지역중 한곳으로 손꼽힌다. 그곳이 바로 충남 연기군 전동면 청람리에 자리하고 있는 개미고개다.

1950년 개미허리처럼 잘록하다 해 이름 붙여진 개미고개는 6·25 당시 우리나라 군 작전의 중요방어선으로 전략 요충지였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전쟁으로 북에서 남쪽으로 무섭게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의 기세는 서울 경기를 시작으로 충청도까지 진격해 왔고 경부선(하행선)철도를 따라 첫 번째로 만나는 개미고개 터널에서 제동이 걸렸다.

6·25전쟁 중요방어선의 최대 접전지로 손꼽히는 개미고개 전투.

미국 육군 제24사단 소장 딘사단장(William F. Dean)은 전략 요충지 중요방어선을 사수 하기 위해 제21연대장 스티븐스 대령(Richard W. stephens)에게 명령을 하달하고 개미고개 좌·우측 능선에 진지를 구축해 북한군의 공격 지연작전을 수행케 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같은해 7월 11일 새벽 스티븐스 대령이 이끄는 미 육군 제21연대 병력은 절대 우세였던 북한군 제4사단과 제3사단의 교대공격으로 혈전의 전투를 벌인 결과 적 남진을 5일간 지연시키는 등 북한군의 남침전략에 커다란 타격을 준 작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전투는 12시간동안 계속됐고, 혈전을 벌인 결과 미국 육군 제21연대 병력 667명중 517명의 전사자가 발생 했다.

개미고개 전투가 끝이 나고 이곳 상황을 목격한 지역 주민들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고 증언해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짐작케 했다.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은 개미고개 터널 주변에 남아 있는 수많은 총탄 자국이 뒷 받침하고 있고 6·25전쟁 이후 30년이 흐른 1980년 여름께, 미군 전사자 알 마기니스 상사의 유해가 발견돼 그의 고향 미시시피주로 돌아가기도 했다.

개미고개 전투 당시 7세였던 이경덕씨(68·전의면)는 어렸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며 “개미고개와 맞은편 오약골이라는 능선에 미군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현재 1번국도를 따라 전동면에서 소정리 방향에 있는 덕고개에서 북한군과의 전투가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연기군 전동면에 살고 있는 김정용씨(85)도 “개미고개 전투 당시에는 너무 무서워 밖을 나오지도 못했는데 피란길에서 확인한 결과 많은 미군들과 북한군이 논과 밭에 죽어 있었고 휴전이 되면서 고향으로 왔을 때는 이미 시신이 수습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또 이들의 생생한 증언에는 “미군 전사자 뿐 아니라 북한군의 시신도 개미고개 능선 어딘가에 묻혀 있을 수 있고 전쟁 후 전투기 폭격으로 불에 탄 탱크 위에 흙으로 메워 길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현재 개미고개 전투 지역에는 2004년 미군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연기군에서 추모비를 설치했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시신을 찾지 못한 미국측 유족과 많은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32사단 3585부대는 오는 7월 4일까지 6·25 한국전쟁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이들의 유해 발굴 기간으로 정하고 개미고개와 금남면 일대를 대상으로 발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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