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옥천 정지용 생가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시 ‘고향’

가사가 감정을 지배한다.

노래가사가 부르는 이나 듣는 이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부르는 사람은 가사에 따라 감정을 잡을 것이며 듣는 사람도 가사를 따라가며 감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사를 잘 모르는 채 멜로디만으로 감상하는 외국곡의 경우는 예외로 하자.

가사가 노래를 돋보이게 한 예(例):

작가 한경혜씨가 우리말 가사를 붙인 유럽의 연주그룹 ‘시크릿 가든’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원제는 Serenade to spring)가 결혼식 단골 노래가 된 이유는 순전히 가사 때문이다. 이 노래는 원래 가사 없이 멜로디뿐인 연주곡이었다.

기존의 멜로디에 가사를 만들어 붙이는 경우, 가사의 의미에 따라 선호도와 부르는 감정이 천양지차다. 물론 기존의 시(詩) 등에 곡을 붙이더라도 어떤 멜로디냐에 따라 호감도가 크게 달라진다.

정지용 작시, 채동선 작곡으로 된 ‘고향’은 같은 선율에 ‘망향’, ‘그리워’ 등 여러 개의 가사가 붙은 대표적인 가곡이다. 가사가 된 시는 이렇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먼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이 시는 정지용(1902~1950)이 일제 때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 1932년에 쓴 시다. 나라 잃은 슬픔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리던 고향이 아니어서 마음은 멀리 항구에서 떠돌고 있다는 내용이다. 작곡가 채동선(1901~1953)이 이듬해인 1933년에 곡을 붙였다.

그런데 정지용이 1950년 6·25 당시 월북으로 오해받으면서 (해금될 때까지 약 40년간) 이 가사를 쓸 수 없게 됐을 때 박화목 시인이 채동선의 멜로디에 새 가사를 붙였다. 그것이 ‘망향’이다.

 

              망향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내 마음은 푸른 산 저너머

  그 어느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듯

  철 따라 핀 진달래 산을 덮고

  먼 부엉이 울음 끊이잖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멘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렴아

  그대여 내 맘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일레라

 

필자는 1970년대 초반 대학시절 ‘망향’을 처음 알았다. 내용이 애조를 띠면서도 퍽 낭만적이어서 미팅, 야유회 등에서 종종 불렀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나서 이 노래의 원조가 ‘고향’인 것을 알았다. ‘고향’으로 불러보니 같은 멜로디임에도 감정이 전혀 달라진다. ‘고향’의 가사는 서글프고 공허하고 침울하다. 한마디로 슬픈 노래다.

낭만적인 기분으로 불렀던 노래가 슬픈 노래로 변한 것이다. 비슷한 감정으로 부를 수가 없다. 이러한 감정의 혼란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느 작곡가가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사’라고 말했다. 과연 맞는 말임을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개 작사, 아무개 작곡이라고 작사자를 앞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향’이 슬픈 노래라고는 해도 궁상맞게 불러서는 안된다. 어떻게 부르는 것이 가장 이 노래의 의미와 맛을 살리는 것일까? 그것도 요즘의 조그만 숙제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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