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이흥렬(왼쪽) 작사자 없이 작곡자 이흥렬 이름만 나와있는 바위고개 악보.

‘바위고개’는 어디에 있는 고개인가?

지난 4월, 이정식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의 원고를 마무리 하면서, 책꽂이에 있던 한국가곡전사(韓國歌曲全史, 금성출판사 발행, 1967)를 다시 꺼내보았다. 44년을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악보집이다.

이 악보집은 처음엔 네모진 4각의 통속에 5장의 가곡 레코드와 함께 들어있던 것이다. 유니버살레코오드사에서 LP판으로 제작한 레코드의 표지에는 그때까지 흔히 보던 고즈넉한 우리네 농촌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실려있어 가곡이 지닌 의미(서정성, 향토성)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가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의 ‘봉숭아’를 비롯해 그 때까지의 유명 가곡 68곡이 들어있다.

레코드는 이사를 다니면서 없어졌지만, 짙은 곤색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악보집은 조금 낡고 색깔만 약간 바랬을 뿐 아직 건재하다. 한 질로 된 그 레코드와 악보집은 선친(고 이경성)께서 노래를 좋아하던 내게 선물로 사주신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7년이었다. 그 음반과 악보집은 나의 가곡 선생이었다. 그 가곡들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이번에 쓴 것이다. 물론 그 후에 나온 가곡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가곡전사’를 한 장 한 장 들쳐보다가 ‘바위고개’에서 잠시 멈췄다. 다른 노래에는 모두 작사자와 작곡자가 나와있는데, 이 노래엔 작사자의 이름은 없고 ‘이흥렬 작곡’이라고 작곡자 이름만 나와 있다. 왜 작사자 이름이 빠져있을까?

 

               바위고개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 즐겨 꺽어 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10여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한때 최고의 인기가곡 중 하나였던 ‘바위고개’는 지금 이흥렬(李興烈, 1909~1980) 작사 작곡으로 되어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악보집에는 모두 그렇게 되어있다. 가곡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젊은 층이 아니라면 가곡 ‘바위고개’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구나 부르기 쉬운 부드러운 멜로디에다 정감어린 가사 때문일 것이다.

고려대, 숙명여대 교수와 숙명여대 음대학장을 지낸 이흥렬은 ‘바위고개’외에도 ‘어머니의 마음’ ‘꽃구름 속에’ ‘코스모스를 노래함’ ‘봄이 오면’ 등 가곡과 동요 ‘섬집아기’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다. 그는 그의 곡들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서정적 선율로 인해 ‘한국의 슈베르트’라고도 불렸다. ‘바위고개’는 1934년 발행된 ‘이흥렬 작곡집’속에 들어있다. 이 작곡집 속의 제목은 ‘바우고개’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모두 ‘바위고개’

이흥렬은 생전에 “‘바위고개’는 어디에 있는 고개인가?”하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때마다 늘, “바위고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개이며,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의 온 국토가 바위고개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가사에서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임’은 빼앗긴 조국이며, ‘10여년간 머슴살이’는 한일합방 이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우리 민족의 서글픈 처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데, 식민지하에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무궁화꽃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삼천리 강산 어디에나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민족적 울분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쓴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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