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민족의 봄 색깔은 연분홍 -

▲ 여수 영취산의 진달래 군락(사진=양천공 사진작가)

봄이 오면 우리나라의 산을 가장 먼저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것이 진달래꽃이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봄꽃이다.

봄에 입는 치마도 연분홍색이어야 제격이다. 봄의 색깔로 그만한 것이 없다. 은은하고 포근하다. 봄 내음새도 느껴진다. 

파인 김동환의 시로 된 가곡 ‘봄이 오면’에서 뿐만 아니라 진달래꽃은 봄노래에 대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말할 것도 없고, 김동환의 다른 시인 ‘산 너머 남촌에는’(가곡으로는 제목이 ‘남촌’)에도 진달래꽃이 이렇게 나온다.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작시 김규환 작곡

 1절: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이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대나

 

가곡 ‘바위고개’도 바위고개와 진달래꽃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으며 그 언덕에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보니 그 꽃을 즐겨 꺾어주던 우리 님이 생각나서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진다”는 것이 가사의 주요 내용이다.

이흥렬 작사 작곡으로 되어있지만, 원래의 작사자는 이서향이라는 월북 작가임이 10년 전쯤 뒤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악보집에 그렇게 고쳐진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동요 ‘고향의 봄’에는 ‘아기 진달래’까지 등장한다.

고향의 봄

             이원수 작시 홍난파 작곡

 1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는 시인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인 것이다.  이원수 선생이 경남 창원에서 살던 14~15세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1926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어린이’ 1926년 4월호에 처음 실렸다. 이원수 선생이 1911년생이니까 잡지에 실린 나이가 15세이다.

처음엔 동요 ‘산토끼’의 작사 작곡자인 초등학교 교사 이일래씨가 이 동시에 곡을 붙였는데 일부에서만 불렸다. 그러다가 1935년에 홍난파 선생이 지금의 곡을 붙인 후부터 널리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대표적인 봄노래이며 동요이지만 성인들의 합창곡으로도 많이 불린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감칠 맛나게 부른 ‘고향의 봄’도 있다.

진달래꽃이 이처럼 봄노래에 어느 꽃보다도 많이 등장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또 요즘에는 진달래꽃을 소재로 한 시나 노래를 짓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가 아는 진달래꽃이 들어가는 노래들은 대개 일제시대( 1910~1945)때 지어진 것들이 많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상징인 ‘무궁화꽃’을 문학작품 등에 못 쓰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어디에나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꽃으로 대신했다는 얘기가 있다. 비극적인 민족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목련과 매화를 거의 국화(國花)처럼 여기고 있다. 벚꽃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다. 목련, 매화, 벚꽃이 모두 봄꽃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는 7월에서 9월 사이에 꽃이 피므로 봄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봄꽃이라면 단연 진달래꽃을 떠올리는 것이다. 연분홍빛 진달래가 군락을 이뤄 산을 덮고 있는 모습을 헬기 등에서 촬영한 장면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봄바람에 날리는 연분홍치마는 바로 봄바람에 흔들리는 연분홍 진달래꽃의 이미지다. 그 연분홍빛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봄의 모습, 봄의 색깔이 아닌가 한다. 진달래꽃은 바로 그러한 우리 민족의 봄의 정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 S. 엘리엇이 노래한 잔인한 달 4월에 온갖 꽃들은 비로소 계절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추위에 움츠렸던 겨울을 지내고 맞는 4월이 잔인하다는 것은 (시인의 속뜻이야 어떻든)새 생명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역설적 화법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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