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전령,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벚꽃 -

▲ 매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유명한 시인 T. S. 엘리엇(1888-1965)이 쓴 시의 한 구절이다.

4월의 비극적 역사적 사건들을 종종 이 시구에 빗대어 이야기하는데, 역사적 사건만 갖고 보면 어찌 4월만 잔인하겠는가? 그러나 4월이 오면 사람들은 언제나 이 독특한 시구를 곧잘 떠올린다. 4월의 표어처럼.

이 시구는 엘리엇의 유명한 시집 ‘황무지’의 ‘죽은 자의 매장’이라는 기다란 시의 맨 앞에 나온다.

 

       죽은 자의 매장

                   T. S. 엘리엇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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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 황동규 옮김. 민음사, 1995>

 

T. S. 엘리엇은 미국 미조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후에 영국으로 국적을 옮긴다. 조상은 원래 미국으로 이민간 영국사람이었다. 다시 그의 선조들의 땅인 영국으로 돌아간 셈이다.

4월의 잔인함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 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22년에 발표되었다. 산업화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인간의 모습을 그린 시라고 한다.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에 대해 ‘망각과 무지속에 안주하고 싶은 인간에게 봄은 새 생명의 움틈과 같은 새로운 자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라는 해석도 있다. 위대한 시인의 언어를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나무도 곰이나 개구리, 뱀처럼 겨울에는 동면을 한다. 수액이 흐르면 몸체가 얼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비로소 물이 돌기 시작한다. 동면하던 몸체에 뿌리로부터 수액이 올라오고 꽃을 피울 때 나무도 산고(産苦)를 느낄까?

이 잔인한 달 4월에 우리는 꽃 구경을 간다. 진해 군항제의 벚꽃 축제를 시작으로 청주 무심천변으로, 서울의 여의도로, 벚꽃 소식은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퍼지며 상춘객들을 들뜨게 한다.

그러나 사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은 매화(梅花)다. 남녘에서 3월 중순부터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은 대개 희거나 연분홍 빛이다. 짙은 분홍빛 매화도 있다. 매화는 ‘고결한 기품’의 상징이다. 올해는 구제역으로 전남 광양의 매화축제가 공식적으로는 취소되었지만, 매화를 감상하려는 인파는 여전했다.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은 3월 하순이면 하얀 매화에 뒤덮여 절경을 이룬다. 그야말로 눈꽃 마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4월로 넘어가면서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일명 산수유 마을)에서 시작된 노오란 산수유가 전국 곳곳에 평화로운 노란 풍경화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잎 없는 가지에 탐스런 흰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우아한 목련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굳이 품위(品位)로 말한다면 키 큰 산수유에 조금 못 미치는 듯 하지만 노란 색깔만큼은 그에 못지않은 것이 개나리다. 곳곳에 노란 군락을 이루며 사는 개나리 역시 봄의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연분홍 진달래도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이 추워서 올해는 개화가 조금씩 더디다. 이렇게 먼저 오는 봄은 진하지 않은 색깔이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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