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통기타 가수 박인희가 불러 히트한 ‘세월이 가면’이란 노래가 있다.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노랫말은 서른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인환(1926~1956)의 시다.

이 노래는 6·25전쟁이 끝나고 3년께 1956년 초봄에 만들어졌다.

명동에 경상도집이라는 주점이 있었다. 여기에서 어느 날 시인 박인환을 비롯해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가수 나애심 등 몇 사람이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한곡 불러달라고 졸랐다. 나애심이 ‘부를 노래가 없다’며 꽁무니를 뺐다. 나애심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 등 히트곡을 낸 당시 유명했던 가수이자 배우다.

이때 박인환이 종이에 뭔가 끄적이더니 앉은 이들에게 보여줬다. ‘세월이 가면’이란 제목이 붙은 시였다. 이 시를 읽고 샹송에 일가견이 있고 작곡도 할 줄 아는 이진섭이 즉석에서 샹송풍의 곡을 붙였다. 후에 히트곡이 된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태어났다.

처음엔 나애심이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가락을 따라불렀는데, 나중에 합석한 테너 임만섭이 우렁찬 목소리로 이 곡을 노래하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노래 소리에 끌려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6·25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50년대 중반, 그 시절 명동이 만들어 낸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 시이자 노래다.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이것이 원래의 시이다. 우리가 아는 노랫말은 이와 조금 다르지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이 노래는 나애심이 처음 불렀다고도 하고, 테너 임만섭이 처음 불렀다는 얘기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가수 현인씨가 이 노래를 부른 최초의 가수다. 공식적이란 말은 대중 앞에서 공식 레퍼토리로 불렀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히트를 못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현인씨의 노래를 기억하는데, 현인씨의 노래는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이 특징이다.

‘세월이 가면’ 같은 애상적인 노래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다가 10년도 더 지난 후 1970년대에 통기타 가수인 박인희씨가 다시 불러 히트를 했다.

그래서 노래는 어떤 가수가 어떤 창법으로 부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박인희씨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이 시와 노래의 정서에 잘 어울렸다고 할 수 있다.

박인환이 이 시를 즉석에서 썼다고 하지만, 시상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가다듬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쓰던 그날 박인환은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낮에 망우리에 있는 그의 첫사랑 여인의 묘소에 다녀왔다는 얘길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자신의 시 ‘목마와 숙녀’를 좋아하던 여인과 피난통에 헤어졌다가 그 얼마전에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서 시를 썼다는 얘기도 있다.

박인환은 이때 기혼이었다.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박인환 선시집’(1955)에 ‘아내 이정숙에게 보낸다’고 헌사(獻辭)를 인쇄했을 정도로 부부는 금실이 좋았다. 1955년에 배를 타고 미국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내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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