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온(金守溫)은 조선 세조 때 유명한 학자다. 그의 책 읽기는 유별났다. 그는 책을 한 장 한 장씩 찢어 옷소매에 넣고 다니며 너덜너덜 할 때까지 달달 외웠는데, 다 외웠다고 생각되면 옷소매에 넣고 다니던 책을 버리는 것이 그의 독서법이었다. 한 번 책을 잡았다하면, 그야말로 서적 사이로 흐르는 ‘지혜의 샘’까지 탐닉해야 책 읽기를 끝내는 것이다.

김수온은 신숙주(申叔舟)가 신주단지처럼 소중히 여기며 간직하고 있는, 세조가 하사한 ‘고문선(古文選)’을 어렵게 빌려 읽게 됐다. 신숙주는 빌려간 책을 몇 달이 돼도 돌려주지 않자 김수온의 집을 찾아갔다.

책 읽기 달인들의 유별난 습관

김수온이 쓰는 방에 들어가 보니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고문선을 한 장 한 장 찢어 온 통 방안을 도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숙주는 넋을 잃고 말았다. 신숙주가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김수온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누워서 마음의 살이 되게끔 삭히고자 책장을 찢어 도배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수온은 책을 양(量)으로 읽지 않고 질(質)로 읽는, 깊이 있는 독서를 실천한 것이다.

즉,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살이 되도록 마음속에 체득화 하는 것이 그의 독서법이었다.

책 읽기의 달인 중에 중국의 황산곡(黃山谷)과 조선 중종 때의 김굉필(金宏弼)이 있다. 중국 소동파(蘇東坡)의 친구인 황산곡은 “사대부가 사흘만 글을 읽지 않으면 거울보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글을 읽지 않으면 마음에 영양이 없어 수척해지고, 그 수척해진 마음이 거울에 비쳐 보이는 안색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료 학자들이 며칠 책을 읽지 않고 황산곡을 만나면 여지없이 얼굴 안색으로 책을 읽지 않은 것을 알아낼 정도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산곡이 “알게 해주는 백권 보다 살이 되게 하는 5권의 책을 갖기가 힘들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김수온처럼 얼마나 깊이 있는 책 읽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조광조의 스승인 김굉필도 서른 살까지 오로지 ‘소학(小學)’ 한 권만을 읽었다고 한다. 김굉필 역시 소학을 수도 없이 읽다보니 읽을 때마다 책을 이해하는 깊이와 폭이 남 달랐을 것이고 그의 독서의 깊이 보통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독서를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책 읽기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대부가 3일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은 어언(語言)이 의미 없어지고,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기 또한 가증(可憎)하다”(황정견),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 때 ‘일리아드’를 귀중하게 상자에 넣어 가지고 다녔던 일화는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책을 전쟁터에서까지 읽었던 것은 책 속에는 수천 년 동안을 두고 쌓아온 사색과 체험과 연구와 관찰의 기록이 수도 없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40년 철권정치를 한 이집트 무바라크정권이 시민혁명으로 하야시키고 무아마르 리비아 카다피 독재정권이 시민혁명으로 곧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튀니지발(發) 민주화의 거대한 도화선이 천안문 광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국은 어떤가. 그 불길은 결국 북한 김정일 정권으로 향하겠지만, 중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중국의 지도자들은 항상 학습을 한다는 것이다.

2002년 후진타오가 취임한 뒤 후 주석과 베이징·상해시장 등 25명의 정치국원 집단학습을 매월 진행한다. 학습내용은 국내외 정세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그들이 알아야 할 분야를 총 망라해 지금까지 학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심화학습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때론 지나치지만, 중국지도자들이 모든 일에 자신감에 넘쳐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한다.

총선·대선 후보선택기준도 가능

특히 학습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들은 절박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냉엄한 현실 세계에서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밑에서 부려질 수밖에 없어서다.   

첨언한다면, 정운찬 전 총리가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세 가지를 만나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책과 여행, 사람”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책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내년에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 이어 대통령선거가 있다.

유권자들이 지도자를 선택할 때 후보 선택의 기준을 취미가 독서가 아니라, 과연 이들이 깊이 있는 책 읽기를 하고 있는지가 하나의 대안으로 가능하다. 책은 생각의 깊이를 달리하면서도 머릿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사고력의 그물을 잘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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