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봉길해변 앞의 문무대왕 수중릉.

가까이 살아서 사이가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나라와 나라 사이는 가까이 있어서 사이 좋은 경우가 드물다.

한·일 관계도 그러하다. 옛부터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신경을 건드리는 존재였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못된 짓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그렇고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배가 그렇다.

왜구의 약탈은 삼국시대부터 계속됐다. 지금도 잊을만 하면 독도 문제를 들고나와 종종 우리 국민의 기분을 언짢게 한다. 남의 나라 땅을 제 땅이라고 우기니 너무나 염치없는 짓이다. 무엇이든 고리를 걸어 놓자는 심보일텐데, 아무튼 경계 대상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강력하게 맞대응을 하자니 자칫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아예 무시하자니 그때마다 우리 국민 감정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라. 뭔가 야단 한번 크게 치라’는 쪽이니 곤혹스럽다.

외교통상부장관이 그때마다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서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 경고성 멘트를 하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식하여 취하는 정치 외교적 제스처이다. 

역사적으로,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전에 일본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신 분이 통일신라의 문무대왕(文武大王)이시다. 신라의 왕릉이 대개 경주 주변에 커다란 봉분으로 남아있는데 반해 문무대왕릉은 동해 바다 작은 돌 섬 안 수면아래에 있다.

행정적으로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위치한다. 봉길해수욕장 앞 나지막한 작은 섬이 그곳이다. 흔히 대왕암이라고 부른다. 올해부터는 해수욕장이라는 말 대신 해변으로 통일해 쓰기로 했으니 이제부터는 봉길해변 앞이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

문무대왕릉은 1967년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봉길해변의 문무대왕릉 안내표지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쪽에 보이는 대왕암(大王岩)은 삼국 통일이라는 위업을 완성한 신라 제 30대 문무대왕(재위:661-681)의 바다무덤(海中陵, 해중릉)이다.

대왕암은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길이 약 20m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 조그만 수중(水中) 못이 있고 그 안에 길이 3.6m, 너비 2.9m, 두께 0.9m 크기의 화강암(花崗巖)이 놓여있다.

“내가 죽으면 화장(火葬)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룡(護國龍)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라는 대왕의 유언에 따라 불교식 장례법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이곳에 모셨다고 전한다.

대왕암은 가까이 있는 이견대(利見臺), 감은사(感恩寺)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문무대왕의 거룩한 호국 정신이 깃들인 곳으로 이런 형태의 능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한편 여기를 문무대왕의 유골을 뿌린 곳(散骨處·산골처)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대왕암이 유골을 모신 곳이건 유골을 뿌린 곳이건, 확실한 것은 문무대왕의 정신이 그곳에 있고 후손들에게 일본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남겼다는 것이다.

문무대왕은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 태종무열왕(재위기간 654-661)의 큰아들이다. 왕위에 올라 고구려마저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한 후엔 삼국의 영토에 야심을 드러낸 당나라 군과도 싸워야 했다. 그들을 내쫓은 뒤 남은 걱정이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였던 것이다. 문무대왕 수중릉의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1월 멀리 소말리아 해역에서 작전중이던 우리 해군이 대한민국 국적 선박을 납치했던 소말리아 해적들을 통쾌하게 제압하고 인질구출에 성공해 온 국민을 모처럼 기분 좋게 하였다. 이 작전을 수행한 함정은 최영장군의 이름을 붙인 최영함이지만 2009년 3월 이 지역에 최초로 파병되었던 함정은 문무대왕함이었다.

한편, 대왕릉에는 수많은 흰 갈매기들이 살고 있다. 문무대왕릉을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새우깡의 유혹에는 무척 약했다.

누군가가 새우깡을 들고 나타나면 섬에 있던 갈매기들이 반색을 하고 날아온다. 그런데 그것이 떨어지면 언제 봤느냐는 듯 돌아가 버린다. 어떤 사람이 ‘새우깡 갈매기’라고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래도 그렇게 대왕릉을 지키고 있으니 그 충정이 기특하다 할 것이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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