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양성, 오는 27일 개봉

피해자에게 전쟁이란 잔혹이다. 동시에 가슴 아픈 경험이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된 전쟁은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담아낼 수도 있다. 이준익 감독(52)이 이 극적인 드라마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풍자와 해학을 넣은 ‘평양성’으로 풀어냈다.

‘왕의 남자’에서 왕과 광대의 시선으로 호평받은 그는 권력을 차지한 자가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민초’라는 사실을 부각한다. 다시 또 군대에 ‘끌려’간 민초 거시기(이문식·44)를 통해 어찌면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전한다.

‘황산벌’(2003)에서 주역은 아니었지만 미친듯한 존재감을 뿜어댄 거시기는 ‘평양성’에서는 중심 역할이다. 하지만 감독은 초점을 분산시켰다. 나당 연합군과 고구려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틀에 거시기와 거시기 같은 민초, 고구려 연개소문의 아들 3형제, 거시기와 갑순(선우선·36)의 사랑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당나라를 등에 업은 신라의 불완전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당의 야욕을 간파한 노쇠한 김유신(정진영·47)이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를 도움으로써 결국 당의 전력을 무력화, 한반도에서 몰아내려 했다는 설정이다.

노쇠하고 노망기 있는 할아버지 장군으로 ‘쇳소리’ 나는 대사를 연신 읊어대고 구부정한 포즈로 열연한 정진영과 자기 색깔을 가진 코미디 전문 이문식의 존재는 빛이 난다. 코미디로 홍보되는 영화에서 전혀 의외의 인물인 연개소문 둘째아들 남건을 연기한 류승룡(41)은 특기할 만하다. 고구려를 지키기 위한 긍지를 품고 카리스마를 강하게 풍기는 모습에서 장군의 기개가 감지된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 욕싸움, 인간장기 등 참신했던 전작처럼 평양성의 대결도 새롭다. 로고송 한 편을 선사하는 민초들의 가마솥 쌀 작전, 고구려와 신라의 말싸움 랩 대결, 고구려의 꿀물 폭탄에 이은 벌 공격 등이 기발하다. 난사되는 화살 등 화려한 대규모 전투 신도 볼거리다.

그러나, 감독의 말처럼 몰입이 힘들다. 여러 이야기를 한 데 엮으려 애썼으나 너무 많은 탓인지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봐야하는지 혼란스럽다. 눈에 띄는 인물들조차 코미디와 감동 드라마, 액션으로 범벅돼 어지럽다.

코미디라는 홍보는 어설프기까지 하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지…. 웃음을 주려는 설정이 몇 몇군데 보이지만 관객이 이를 눈치챌 정도면 웃음 포인트 공략은 실패다. 때로는 감동으로 반전을 일으키려나 싶다가도 용두사미 격으로 흐지부지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라는 김유신의 말과 “왜 전쟁에 관심도 없는 우리가 끌려와 싸워야 하는지” 눈물로 호소하는 거시기의 당연한 말이 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 등에서는 감독의 특기를 발견할 수 있다.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하는 한 편의 짬뽕극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짬뽕극인 것은 맞다.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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