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중인 노산 시조집(1932)의 ‘사랑’ 원본 모습.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말이 무엇일까? ‘사랑’ 아닐까? 모든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문학과 예술의 바탕도 사랑이다.

사랑을 빼놓고 인간 사회를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랑은 인간 사회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1829~1910)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지상에 내려온 천사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마침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깨달음을 얻은 뒤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천사 미하일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면서 “첫째, 사람의 가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를 알게 되는 날 너는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미하일 천사는 첫째 물음의 답이 ‘사랑’임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두 번째의 답은 ‘사람은 자신 장래의 일을 아는 능력은 갖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지상으로 추방된지 6년만에 세 번째의 답인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날개가 달려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성경에도 이르기를 “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다. 또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신약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대체로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남녀간의 사랑,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신과의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모습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도 있으나 톨스토이 같은 이는 그러한 사랑(제 식구 제 새끼 사랑)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므로 결코 인간의 사랑일 수 없다고 한다.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여러 사랑 가운데 젊은 날의 관심은 단연 남녀간의 사랑이다. 우리 시 가운데 ‘사랑’이란 제목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의 하나가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의 시일 것이다. 이 역시 노산이 젊은 시절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읊은 것이다.

 

            사 랑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대(부디)마소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 곳이 없느니다.

 

반타고 꺼질진대 애제(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타고 생남(생나무)으로 있으시오

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으니다

 

이것은 1932년에 출판된 ‘노산시조집’에 나와 있는 시조다.

이 시조집의 특이한 점은 시를 짓게 된 동기·배경·일자 등을 해설처럼 함께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노산은 이 시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31년 섣달 그믐, 이날 나(이은상)는 어느 친구와 마주 앉아 시론(詩論)에 관해 오랜 시간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았다. 우리들은 문득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면서 이어 ‘청춘과 사랑’을 말하게 됐다. 나의 친구는 ‘사랑은 타는 것’이라고 했으나 나는 ‘사람의 마음이 끝까지 타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사람은 태초로부터 사랑을 가졌으므로 사랑같이 귀한 것이 없으련만 ‘믿음과 의리와 열정이 변치않는 사랑’을 찾을 길 없는 이 땅 위에선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어리석다 할 것이다. 허나 이제 지나는 길에 그이들을 향하여 두어 장(章) 사랑 노래를 불러볼까 한다.”

노산은 변치 않는 사랑을 찾기 어렵다고 했으나, 정작 시조로는 타려면 재 그것까지 다 타는 것이 옳다고 읊었다. 우리의 선조들도 남녀간의 사랑은 타는 것이라고 했다.

이성간의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깊고 강렬한 것이니 타는 것이라고 표현했던 모양이다.

이 ‘사랑’은 홍난파(1898~1941)에 의해 곡이 붙여져 지금까지 가곡으로 널리 불리우고 있다.

가곡 ‘사랑’은 이제 사랑 노래의 고전이 됐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