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토마스의 백악관 출입이 최장수는 아니다. 2003년 1월 7일 92세로 사망한 여기자 새라 매클렌든은 56년간 백악관을 출입했으나 헬렌 토마스처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자로 예우를 받지는 못했다.

이처럼 헬렌 토마스는 미국 언론계의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지난 7월 초, 그녀의 만 9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했다.

2010년 6월 27일, 그녀는 이날 백악관 뜰에서 열린 유대인 행사(American Jewish Heritage Celebration Day)를 취재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때 데이비스 네세노프라는 한 인터넷 매체 기자(이 사람은 유대인 랍비다)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헬렌 토마스는, “팔레스타인에서 꺼지라고 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있는 거니까” “(유대인들은)자기 집으로 가야 돼. 폴란드건 독일이건 미국이건 어디로든 가야지”라고 말했다.

다음은 대화 내용:

Nesenoff: Any comment on Israel? We’re asking everybody today, any comment on Israel? (오늘 모든 분들께 묻고 있는데, 이스라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Thomas:  Tell them to get the hell out of Palestine. (팔레스타인에서 꺼지라고 하세요.)

Nesenoff: Oooh. Any better comments on Israel? (이스라엘에 대해 좀 좋은 말씀 해주실 수 없나요?)

Thomas: Remember, these people are occupied and it’s there land. It’s not German, it’s not Poland ...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들(팔레스타인)은 점령 당한거예요. 거긴 그 사람들 땅이죠. 독일이나 폴란드가 아니예요.)

Nesenoff: So Where should they go, what should they do? (그럼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야한다는 말입니까? 뭘 해야 하구요?)

Thomas: They go home. (집으로 가야죠.)

Nesenoff: Where’s the home? (집이 어딘데요?)

Thomas: Poland, Germany and America and everywhere else. (폴란드, 독일, 미국 그리고 그밖에 어디든지.)

Nesenoff: So you’re saying the Jews go back to Poland and Germany? (유대인들은 폴란드나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Thomas: And America and everywhere else. Why push people out of there who have lived there for centuries? See? (미국이나 그밖에 어디로든 가야죠.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거기서 몰아내려고 합니까?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수세기 동안 살아왔잖아요.)

이러한 인터뷰 동영상이 해당 매체인 RabbiLive.com은 물론 유튜브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유대인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백악관 측도 “토마스의 발언은 모욕적이며 비난 받을만한 것”이라며 유대 사회의 비판에 동조했다. 백악관 기자실의 동료들마저 ‘변호해 줄 수 없는(indefensible) 발언’이라며 등을 돌렸다.

헬렌 토마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악화된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다. 소속사인 허스트 코퍼레이션 측은 7월 7일 “허스트 뉴스 서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헬렌 토마스가 사임하기로 했으며, 바로 이 시간부터 유효하다”고 발표했다.

헬렌 토마스는 만 90살을 한 달 가량 남겨두고 마침내 백악관을 떠났다. 토마스는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 정 가운데에 소속사가 아닌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지정석을 갖고 있었다. 이 자리도 AP 통신의 차지가 되었다. AP 자리에는 폭스 뉴스가 옮겨와 앉았다.

그녀는 이 사태가 발생한지 석달이  된 2010년 10월, 오하이오의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시 사과는 했지만, 자신의 발언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나라(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실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말에 유대인들이 흥분한 것처럼 자신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침략과 잔인한 처사에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이스라엘 땅은 역사와 더불어 주인이 계속 바뀌어 온 곳이다. 이스라엘은 2천년도 더 전에 이곳이 이스라엘과 유대왕국의 터전이었다는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1948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전까지 지금의 이스라엘은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었다. 이스라엘은 이후 아랍세계와의 전쟁에서 연승하며 영토를 넓혀왔다. 레바논 출신인 토마스는 현재 이스라엘에 점령되어 사실상 난민처지에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깊은 연민의 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2천년간 나라없는 백성으로 세계를 방랑하다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는 600만이 목숨을 잃기도 한 한맺힌 역사를 갖고 있는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에게 영토문제만큼 심각한 것도 없다. 4차에 걸친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 간의 중동전쟁도 대개 아랍측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 주변 아랍국의 전면적인 군사적 공격(제1차 중동전쟁)으로 곧바로 역사에서 사라질 뻔 했던 나라이다.

미국에서 유대인 관련 사안에 누구나 몸을 사린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소수이면서도 미국내에서의 유대인 파워는 막강하다. 주요 언론도 거의가 유대계가 장악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바로 유대인에 대한 비판이며 헬렌 토마스는 유대인에 대한 이 한마디로 그의 언론 인생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녀의 퇴장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녀의 변함없는 비판적 기자정신을 오랫동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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