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스럽게 가는 TV 드라마 ‘대물’…

대물을 매회 빠뜨리지 않고 보고 있다. 시간에 맞춰 못 보면 인터넷에 들어가 다시 본다. TV 드라마를 이렇게 열심히 보기가 얼마만인지 모른다.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어떤 기대 때문이다. 잘 가서 참신한 결말로 끝나기를 바래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볼수록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내용들이 점점 더 눈에 띈다. 원본 만화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은 희화화하고 재벌엔 조심하는 것이 너무 드러나 보인다. 정치인들은 모조리 부패, 저질로 몰고 가면서도, 재벌 기업에 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럽다. 정치권이 화낼만 하겠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에 대해 분개할 수 없다. 사실과 비슷한 면도 많으니까.

정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의 정치자금 챙기는 수법을 보면 더 웃긴다. 선물로 들어온 그림을 내다 팔아서 정치자금으로 만들고, 개발정보 미리 알아 친인척 명의로 땅 사놨다가 개발이익 챙기고 하는 그런 수법들이 나온다. 쩨쩨하고 조잡한 방식이다. 이런 일들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거야 말로 빙산의 일각. 큰 돈은 정치권에 그렇게 오지 않았다. 

실제로 과거 정치판에 흘러다닌 큰 돈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기업으로서는 일종의 보험이며 장래 발생할 이익에 대한 선지급금인 셈이다. 정경유착이 그 말 아닌가? 그래서 기업의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은 다를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최근까지도 검찰이 모 재벌기업 비자금을 조사한다고 한동안 언론에 떠들썩했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웬일로 요즘은 조용하다.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벌 기업도 별로 좋게 그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인들보다는 훨씬 점잖은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언론사들은 대기업의 눈치를 보는 딱한 신세가 되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대기업에 잘못 보이면 광고가 안 오니까. 협찬도 받을 수 없으니까. 언론사의 밥줄을 대기업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서도 만만한 정치인은 완전히 희화화하고, 재벌은 정중하게 다룬다. 대물도 아직까지로 봐서는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기가 있는 정치권력이나 정치인은 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재벌은 다르다.

대를 잇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화낼만한 것이 또 있다.

수틀리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 장면들이다. 만화에서는 그렇게 나온다. 드라마에서도 그걸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정치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또 정치거물인 조배호(박근형)의 숨겨진 딸도 등장한다. 정치권에서 왕왕 나오던 이야기다. 여기서는 버려진 딸로 나온다. 이 딸 장세진(이수경)이 모친과 자신을 버린데 대한 보복으로 조배호의 정적인 강태산(차인표)과 손을 잡고 친 아버지인 조배호를 파멸로 몰고간다는 설정은 막장 드라마를 빼다 닮은 것이다. 만화에도 없는 얘기다.

대통령(이순재)이 -억울하게 음모에 걸려 해임되긴 했지만- 해임된 평검사(권상우)의 복직을 약속하는 등의 스토리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드라마가 허구라고는 해도 그럴 듯해야 허구로서의 맛이 있는 것이다.

대권을 꿈꾸는 야심 덩어리 강태산이 당 대표인 조배호의 음모로 공천 탈락이 된 후 탈당과 신당창당을 추진하다가 조배호의 딸 장세진으로부터 조배호의 비리 물증을 제보받고 조배호를 협박, 오히려 사무총장이 되어 마침내 조배호를 쫓아내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만화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서혜림(고현정)을 도지사 만드는 과정도 만화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서혜림이 대권으로 가는 길은 도지사 될 때처럼 얼렁뚱땅은 아닐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비현실적인 정도가 너무 심하면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법이다.

한편에서는 이 드라마의 한 장면에 정부에 비판적인 시사주간지 ‘시사IN’의 표지가 포스터처럼 벽에 붙여진채 노출되어 드라마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과연 그런지는 더 두고봐야겠다. 대물(大物)이 소물(小物)이 안 되길 바란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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