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충청의 새 길을 열다/- 험난했던 분기역 유치

11월 1일. 마침내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에 고속열차가 정차한다. 12년의 온갖 시련과 난관을 딛고 일궈낸 성과였기에 오송역 개통을 맞는 감회가 크다.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음은 충북의 미래를 담보하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어우러져 이뤄낸 ‘충북의 기적’이다. 대한민국 첨단생명공학의 중심, 교통의 중심, 지역경제의 중심, ‘오송 시대’를 선언하는 서막이었다. 충청매일은 본보 창간 11주년과 함께 한 오송역의 역사적 개통을 축하하고, 오송역 유치를 위해 155만 충북도민이 걸어온 궤적을 되돌아본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중심, 오송 시대의 개막이 향후 충북에 어떠한 변화와 성장을 가져올지 전망해 본다.

2005년 6월 30일.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최종 선정 결과를 앞두고, 155만 충북도민 모두가 숨죽여 정부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충북 오송 확정!”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동안 호남고속철도 오송역 유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온 결실을 마침내 거두게 된 순간이다.

충북의 새 길이 열린 날이다.

그 길은 미래를 향한다. 또 다른 성장과 도약을 약속한다.

155만 충북도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일궈낸 역사다. 12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그 감동과 환희는 더욱 컸다.

정치적 논리에 맞서 싸우고, 열악한 도세(道勢)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때론 분통이 터지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으며 절망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충북의 힘을 믿었다. 시련과 난관 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뤄왔던 충북의 기상은 또 다른 기적을 낳으리라 확신했다. 그 믿음과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위대한 충북의 힘, 도민의 역량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

1993년 8월 정부가 호남고속철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부터 충북도를 비롯한 대전시, 충남도간 치열한 분기역 유치 경쟁이 시작됐다. 충북지역에서도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호남고속철도분기역오송유치추진위원회라는 범도민 민간단체가 출범했다.

유치위는 단순히 오송역 유치를 주장하는 선언적 단체에 머물지 않고, 오송유치의 논리적 타당성과 당위성을 마련한 뒤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유치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철저한 역할분담을 통해 효과적인 대안을 도출해 내는 데 주력했다.

정치논리의 개입을 차단하고, 철저히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선 무엇보다 타당성 논리개발이 중요했다.

그 결과 ‘X축 이론’을 찾아냈다.

X축은 목포나 서울에서 출발한 호남고속철도가 부산이나 서울에서 출발한 경부고속철도와 오송에서 X자로 만나 교차할 수 있는 축을 의미한다.

이는 교통의 제1요소라 할 수 있는 연결성을 충족하는 것은 물론 내륙에 위치, 개발의 사각지대로 인식되고 있는 경북 북부지역과 강원 남부지역의 개발 촉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오송역 유치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객관적 논리의 타당성과 충북도민의 결집력도 정치논리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임을 감내해야 했다. 1999년, 정부가 발표한 4차 국토종합계획에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이 천안역으로 표기됐다.

사실상 분기역 유치경쟁이 끝났음을 말한다. 하지만 충북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부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었다.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확정되지도 않은 분기역을 천안으로 표기, 관보에 게재한 사실을 밝혀내 이를 삭제토록 했다.

2003년 호남고속철 관련한 정부의 마지막 공청회 자료에 분기역을 천안으로 하는 채점표를 포함한 사실도 발견한 유치추진위는 물리적 힘까지 동원해 공청회를 무산시킨 뒤 정부로부터도 오류였음을 시인토록 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당초 선정안이 백지화되고 재용역이 실시됐으나 이후에도 천안역에 유리한 방향으로 연구용역이 진행되자 객관적 타당성 결여와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과 연계해 결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정부를 압박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용역기관을 천안분기역 관철 의도를 지닌 교통개발연구원에서 국토연구원으로 변경한 뒤 2004년 10월부터 세번째 용역에 착수했다.

국토연구원은 호남고속철 분기역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선정하기 위해 분기역추진위원회와 분기역평가선정위원회를 각각 구성, 기본평가항목과 세부평가항목을 마련했다.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분기역 평가단의 객관적 구성과 평가항목 강화 등 평가기준의 공정성을 높였다.

충북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힘겨운 여정이었다. 고난과 시련, 한계로 점철된 역경이었지만, 가다가 넘어져도 일어서야만 했다.

충북의 새 날을 열어가는 진통으로 감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송분기역 유치를 이끌어냈다. 어느 누구의 힘이 아니었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공로도 아니었다.

155만 충북도민 모두의 힘이었으며, 승리였다. 그럼에도 감동과 환희에 빠져 있을 틈이 없었다.

계획안 작성단계에서 수요증가 효과와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됐던 남공주역 설치가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논리에 따라 재부각됐다.

남공주역은 지리적으로 오송역과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어느 지점에 설치되느냐에 따라 오송역의 위상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대처할 사안이 아니었다.

오송분기역의 위상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에 강력 건의, 공주역은 오송으로부터 43.82㎞ 떨어진 거리에 건설하되 오송분기역의 위상을 훼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란 확답을 들었다.

오송분기역 유치는 이렇듯, 난산의 과정이었다. 어느 한 사람 빠지지 않고 일심동체로 움직인 충북도민의 쾌거였다.

충북의 자존심을 다시 한 번 떨친 결과다. 그렇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오늘,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전국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충북의 미래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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