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이 산골에 쑤셔 박혀 뭐하는 거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나며 울화가 치밀 때 김삿갓 소설을 보면서 마음을 삭이고 싶어서였다.

연산군과 광해군에 관한 책을 산 이유도 있다. 절제하지 못하고 세상을 산 사람들이 결국은 어떻게 끝이 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절대로 세상을 막살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싶었다. 농촌에 묻혀 살지만 세상을 포기한 것처럼 막 살지는 말자는 의미였다. 춤판을 배회하며 몇 년 동안 막 살고 나니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사회로부터 패륜아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그 책을 샀다. 저쪽 멀리 청남대 끝자락이 보일 듯 말듯하다.

5,6공 시절만 하더라도 이 길은 무시무시했다. 군경이 삼엄한 경비를 서는 것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검문도 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젠 한낱 광광지로 변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겨우 50여년을 살았는데 세상은 이렇게 변했다. 앞으로 30년 남짓 더 살 수 있을까? 그 30년은 지금보다도 더 많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곳에 대청댐이 생길 때 주민들은 세계적인 호반관광지를 꿈꿨다. 무리하게 빚을 얻어가며 상가를 지으며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갑자기 대통령 별장이 들어서더니 관광개발이 취소됐다. 그 원인이 대통령 별장에 대한 경호문제 때문이었지만 명분은 상수원보호였다.

어디다 호소조차 못하고 살아야 했다. 가슴에 남은 한이 세월이 흐르면서 응어리로 변했다.

문민시대가 열리면서 그 응어리가 터지고 말았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대청댐은 주민들의 한을 품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게 맞는 것이었다.

대통령 별장을 경호한다는 명분이 나빴을 뿐이다. 그렇게라도 했으니까 이나마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숨 돌릴 곳도 없을 것이다. 다 공장이나 러브호텔, 음식점 등으로 메워졌을 것이다. 창빈의 화물차는 고개를 넘고 있다.

승용차만 운전하다가 갑자기 화물차를 운전하려니까 모든 게 익숙하지 않다. 천안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이상 운전하는 동안 감각을 많이 익혔다. 운전이야 금방 숙달이 될 테지만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게 문제다. 갑자기 차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차가 없으면 농촌생활을 할 수가 없다. 사과나무 묘목, 잔디, 비료 등을 실어 날라야할 것이다. 승용차에 실었던 언론사 간부라는 가면을 벗자. 이 트럭에 노후의 꿈을 싣고 달리자. 이제 10분만 더 가면 된다. 옆자리에 노트북이 보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 거린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글을 써보자. 우선 춤판의 폐해를 세상에 알리는 글부터 쓰자. 춤판에만 가면 여자는 얼마든지 많다는 오해부터 불식시키자. 춤만 잘 추면 세상을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소문만 믿고 불나비처럼 뛰어드는 폐해부터 막아야 한다.

환상에 취해서 뛰어들었다가 덫에 빠지고 올무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불나비들이 없도록 진실을 알려야 한다. 그것도 언론인의 사명이다. 언론인들이 사각지대로 방치한 곳이 바로 춤판이다. 그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보고 들은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설을 쓰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