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춤은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더 강하다. 그 폐해 또한 더 심각하다. 한번 빠지면 중독성 때문에 도저히 헤어나질 못한다. 평생 포로가 되어 자신은 물론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술이나 담배 마약 등은 중독이 돼도 자기 자신만 해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춤은 상대까지 파멸시킨다.

그래서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특히 그 상대는 대부분 결혼을 한 유부남 유부녀이기 때문에 가정을 파괴시킬 수밖에 없다. 가정이 깨어지면 사회의 기반이 무너진다. 이게 바로 춤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다. 이게 바로 춤의 반사회성이다. 내가 춤을 배울 때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만류했다면 난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 난 누구인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언론이었다. 반드시 고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정의감도 강했다. 서민들의 생활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정론만을 직필하는 참 언론인이었다. 이제 그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춤판이나 빠대고 다니는 추레한 한량으로 변해버렸다.

과거에 언론인이었다는 경력까지도 바람난 여편네들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사악한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창빈은 가슴이 막혀온다. 운전을 하기가 힘들 정도다. 창빈은 대청댐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에 차를 대고 얼마 전 친구와 나누었던 얘기들을 회상한다.

“여기 와서 글이나 쓰지?”

이 말 한마디만 믿고 그 친구를 찾아 가는 중이다. 다소 불안하기도 하지만 막막하진 않다. 창빈은 다시 시동을 건다.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면 호수가 보였다간 없어지고 없어졌다간 다시 보인다. 물이 가득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춤판에서 찌든 때가 씻기는 기분이다. 그날 친구는 창빈에게 방문을 활짝 열어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와서 글 쓰라고 깨끗이 치워놨어.”

방 한가운데는 작은 상도 놓여있었고, 바로 그 옆에는 전화기도 보였다. 작은 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전화기에 연결해 쓰면 아무런 불편도 없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이곳은 그가 예비해둔 비상구였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막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막막한 배회를 끝내고 풀죽은 모습으로 귀가하면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떠오르던 곳이었다. 어째서 멀쩡한 고향을 놔두고 여기가 자꾸 떠오르는 것일까? 동병상린의식 때문일 것이다. 너나 나나 다 같이 실패한 패잔병이라는 의식이 가장 클 것이다.

내 처지가 너무 기가 막혀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지만 비슷한 패잔병끼리 뭉치면 용기가 생길 것이라는 심리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그렇지만 고향은 금의환향하고 싶은 곳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천신만고 끝에 대권을 잡고 나면 맨 먼저 달려가는 곳이 고향이다.

조상 산소에 성묘를 하면서 금의환향했음을 알린다. 그러니 고향은 출세해서 뻐기며 가는 곳이지, 다 망해서 갈 곳이 없으니까 찾아가는 곳은 아니다. 창빈은 뒷좌석을 흘깃 쳐다본다. 몇 권의 책이 보인다. 여기에 오기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하면서 산책이다.

김삿갓, 연산군, 광해군 등에 관한 역사책들이다. 말이 전원생활이지 막상 일주일만 지나면 답답해서 안달이 날 것이다. 그런 때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김삿갓 소설을 샀다.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집착과 미련을 버리려는 것이다. 바람이나 구름처럼 무심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