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앞마당에는 잔디가 잘 가꿔져 있었다. 삼각형의 잔디마당 구석에는 막 치다만 것 같은 골프채와 공이 보였다. 푸른 잔디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가끔 찾아오는 도시 사람들에게 농사꾼의 따분한 모습보다는 자기 마당에서 골프를 치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넌 아까운 재주를 썩히고 있는 거야.”
“왜?”
그 친구는 빙그레 웃으면서도 느닷없는 공격에 방어자세를 취했다. 창빈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교육헌장에 그런 말이 있잖아.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해야 한다구. 넌 여기서 농사나 짓고 살 사람이 아냐.”
“그럼 무엇을 하면 적성에 맞는다는 거냐?”
창빈은 우물가에 아직 치우지 않고 남아있는 숯불구이 흔적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여자의 흔적을 발견한다. 어떤 여자가 저 친구에게 한참 녹아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며 익살을 떨었다.
“넌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도 있을 만큼 타고난 사냥꾼이잖아. 천부적인 소질과 재주를 다 갖추고 있는데, 왜 그 재주를 이 산골짜기에서 썩히냐? 그건 너에게 남다른 재주를 주신 신(神)에 대한 모독이야. 네가 만약에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재주에다 몇 가지 사냥기술과 장비만 갖춘다면 넌 아마 세계적인 사냥꾼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도대체 누구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으려고 할 때 승용차 한대가 보였다.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낯선 차와 못 보던 남자가 와있는 것을 보고는 경계를 하는 눈치였다. 춤판을 누비고 다니면서 사냥기술이란 기술은 다 배웠고, 장비란 장비는 다 갖춘 전문사냥꾼이라고 자부하는 창빈이다.
그런 창빈이도 감히 건네다 볼 수 없을 만큼 젊고 아름다운여자였다. 창빈은 저 여자가 필시 저 숯불구이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물었다.
“저 여잔 누구냐?”
“그건 선생이 알 거 없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봐.”
“네가 춤을 배우면 좋겠다는 말야. 난 솔직히 네가 이런 산골에 쳐 박혀 있으면 여자는 구경도 못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어. 도시에서 한참 잘 나갈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자들만 골라서 놀고 있으니 놀랍잖아. 그래서 너를 보고 타고난 사냥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야. 넌 춤만 배우면 그때부터 무지무지하게 바빠질 거야. 청주나 대전에서 있을 게 아니라 당장 서울로 올라가야 될 거다. 딱 6개월이면 쇼부가 날 거다.”
“그 정도냐? 한번 배워볼까?”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쳤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창빈의 눈에 자유분방하게 세상을 산다고 보였던 그 친구도 춤 하면 머리를 흔들었다. 정상적인 인간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창빈은 세상을 너무 막 살았다는 회한으로 가슴이 아팠다. 맨 처음 호기심을 갖고 무도학원을 찾아갔을 때,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그렇게까지 빠져들진 않았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 호기심으로 담배를 피우다가도 누군가가 담배의 해독이 엄청나다는 것을 설명해주면 끊고 마는 것처럼 발을 끊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