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창빈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비상구를 찾는 심정으로 가지만 며칠이나 버틸지 모르겠다. 그러니 아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희미한 빛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는 심정이다. 그보다는 오랜만에 가장대우를 받는 기분이다. 

실직한 이후 아내가 외출하는 남편을 마중하며 말이라도 붙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아내에겐 남편이 어딘 가로 떠나준다는 자체가 희망일 수 있다. 연락처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의례적인 인사말일 수도 있다.

‘혹시?’

창빈은 현관문을 닫으면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갖고 다녀보았자 단 한 통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날이 많다. 그만큼 사회로부터 잊혀진 신세다. 그렇지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령의 장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당숙의 병세도 위중해 보였으며, 이종사촌 누나도 애들 결혼을 곧 시킨다고 했다.

요즘은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워서 달력에 표시까지 해놓았다가 만사를 제치고 참석한다. 창빈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뒤통수에 쏟아지는 눈길을 따갑게 느낀다. 아내는 매사를 자기 식으로 처리하는 남편이 마땅치가 않다.

창빈도 그게 싫다. 사주에 비견겁(比肩劫)이 많아서 그런 걸 어쩌느냐고 생각한다. 금(金)이 가을에 태어난 데다 비견겁까지 많으니 전형적인 군겁쟁재 사주다. 이런 남자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강하다. 주변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

다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집을 나서는 남편이 쓸쓸해 보인다. 저 남자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야 인물이 난다. 남편이 아침마다 정장을 입고 출근 하던 때가 그립다.

“왜 갑자기 사표를 내겠다는 거예요?”

“월급을 주지 않아서 사표를 낼 수밖에 없어.”

“봉급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 수는 있잖아요. 신문사에 적이라도 걸어 놓고 있는 게 낫잖아요.”

입이 닳도록 말렸다. 혼자서는 말릴 수가 없어서 시어머니까지 동원했다. 그래도 안돼서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찾아갔다. 이 고비만 넘기면 크게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적을 써주면서 남편의 양복주머니에 몰래 넣어 놓으라고 했다. 팔자는 속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사표를 내고 말았다. 

“사표 수리됐으니까 퇴직금 타가시라고 하세요.”

신문사에서 연락이 오던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붙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게 다 피 내림이야, 쟤 아버지도 젊어서 그 좋다는 중앙청을 다니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만 두더니 쟤마저 저러는구나. 쟤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니? 다 팔자 따라가느라고 그러는 거겠지. 애들 공부나 제대로 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며느리를 불렀다. 손에 쥐어준 통장에는 천 만 원이 들어있었다.

그때는 고마운 줄을 몰랐다. 장남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서야 그게 뼈 속 깊이 사무친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고단한 삶을 빼 닮듯 뒤따라가는 큰아들을 보면서 자신의 고달팠던 젊은 시절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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