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창빈은 달력으로 다가간다. 올해가 경인(庚寅)년이다. 난 너무 강해질 수가 있다. 그러지 않아도 강해서 늘 말썽이었는데 더 강해지면 부러질 수도 있다. 내년까지는 더 많이 양보하고 참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다.

아내는 아까부터 창빈을 주시하고 있다. 평소 때 외출하는 모습이 아니다. 어디 먼 곳으로 떠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말을 해주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부부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다. 감정을 억제하고 다시 한 번 묻는다.

“어다 가요?”

“잠깐…”

잠깐 산책을 갖다 온다는 것인지, 슈퍼를 다녀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느냐고 퍼붓고 싶다. 창빈은 현관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다가는 다시 들어온다.

“탁구라켓 어디 있지?”

“당신 차에 없어요?”

창빈은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만큼 건망증이 심해졌다. 탁구는 창빈이가 마약을 끊기 위해서 먹는 약이다. 탁구라는 약을 먹으면서부터 춤판을 기웃 거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젠 춤판이 아련한 추억처럼 멀어졌다. 창빈은 라켓을 찾는 자신이 웃긴다고 생각한다. 그 시골에 탁구 칠만한 곳도 없을 뿐더러 같이 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탁구라켓을 챙기는 것은 약을 챙기는 환자의 심정일 것이다. 창빈은 미래를 꿈꾸어 본다. 시골생활에 기반이 잡히면 탁구대를 하나 들여놓고 싶다.

인근에 할 일 없는 노인들을 불러놓고 탁구를 치고 싶다. 가끔 칼국수 내기를 해도 좋을 것이다. 창빈은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다가 주춤한다. 몇 권의 책을 더 갖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돈을 떼었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법률상담을 해주고 싶다. 간단한 소송서류는 직접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빈은 계단을 다시 오르려고 하다가는 도루 내려간다.

‘일단 가보고 나서 결정하자.’

창빈의 아내는 희망이 보인다는 표정이다. 하루 종일 집에 들어 박혀있는 남편 모습이 지겹다. 이젠 끝이 나는가 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신사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나가야하는 건데, 어째서 작업복을 입고 가는 걸까?

저 나이에 취직은 못할 테니 어디 조용한 시골에라도 들어가 일을 하려는 걸까? 틈틈이 글이라도 써보려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때 창빈이가 다시 들어온다.

“뭘 빼놨어요?”

창빈은 말없이 헤어드라이를 찾아 가방에 넣는다. 시골생활이지만 가끔 머리를 만질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 가는지 연락처나 알려주고 가야할 게 아네요.”

운동화 끈을 매는 창빈의 등 뒤에서 아내가 종알거린다.

“알았어.”

자리가 잡히면 전화를 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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