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그런 사람들은 혈액순환이 잘 안 돼서 손발이 어름처럼 차다. 심장을 보(補)해서 불을 괄게 지피거나 소장이나 삼초를 사(瀉)해서 물이 넘치지 못하도록 둑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 금방 낫는 병이다. 단 한방으로도 통증을 완화시켜줄 수도 있다.

그렇게 간단한 처방이 있는 데도 몇 년씩 고생을 하고 다니는 게 안타깝다. 창빈은 당장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슴이 뛴다. 그런데 무면허 돌팔이다. 맞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병을 고치는데 자격증이 무슨 소용인가?

돌팔이라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병을 고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 거린다. 창빈은 자신도 모르 게 그 남자를 부르고 말았다.

“아저씨 어깨 아프세요?”

“말도 말아요. 몇 년째 고생을 하고 있답니다.”

“혹시 배꼽 밑에가 아프지 않은가요?”

“아파요.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세요?”

혹시 한의사 아니신가요? 소리를 하고 싶지만 참는 모양이다.

“제가 침을 좀 놓을지 아는데 한번 맞아 볼래요?

남자는 갑자기 말문을 닫는다. 의심의 눈길로 창빈을 바라본다.

창빈이 한 단계 더 높인다. 여기서 물러서면 정말 돌팔이가 되고 만다.

“손에다 작은 침 몇 개 꽂는 거라 부작용도 없고, 아프지도 않아요. 요즘 수지침 많이 배우잖아요.”

창빈은 여기까지 말을 해놓고 남자의 눈치를 살핀다. 이해는 가지만 침을 맞고 싶지는 않다는 표정이다.  “제 동생도 한의사인데요, 아무리 맞아도 안 낫더라고요.”

창빈은 온몸에 힘이 빠진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진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고 다녔다. 처음에는 돌팔이란 소릴 들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한바탕 싸우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창빈은 허공을 향해 중얼거린다.

“병만 잘 고치면 됐지 자격증이 무슨 소용인가? 대법원에서도 돈을 받지 않고 놓아주는 침 봉사활동은 민간요법이라고 해서 문제 삼지 않는다. 맞기 싫으면 그만 두라지….”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모욕감을 떨쳐버린다. 창빈은 시골에 들어가도 이웃들과 친할 수 있는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 걱정한다. 농촌사람들이 순박한 면도 있지만 외지사람들을 무조건 경계하는 습관도 있다. 무엇인가를 베풀지 않으면 배척 받을 수밖에 없다.

신문사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일찍 퇴직했는데, 춤판에서도 도태 당하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농촌으로 도피를 하려는 것이다. 거기서도 배척을 받으면 정말 갈 데가 없다. 창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 옆으로 간다. 책꽂이를 바라본다. 하나 둘 셋 넷을 센다. 다 침술에 관한 책들이다. 맨 처음 수경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도 아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느 날 배가 아프다고 하자 아내가 침을 맞아보라고 했다. 침은 한의사나 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니 신기했다.

장난삼아 맞아보기로 했다. 한의원에서 놓은 침보다 작았다. 수지침이라고 했다. 손에다가 몇 방을 놓으니 신기하게 소화가 잘 되었다. 그래서 침술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성당에서 수경침을 배웠고, 다시 수지침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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