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의를 존중해 새해를 맞아 인사를 차리는 문안단자(問安單子·임금이나 웃사람에게 문안을 드릴 때 올리는 문서)와, 전자우편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연하장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용했던 문안단자는 정성껏 붓글씨로 썼으며, 인쇄된 각양각색의 연하장이 범람했던 시절에는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나 목판화(木版畵)가 인기를 끌었다.

정보통신 시대의 필수인 컴퓨터와 인터넷이 실생활화 되기 전까지는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와 신년 연하장을 배달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특별 수송 작전까지 펼쳤다. 그리해 한 때 연초에 수백 장씩 보내는 연하장이 허례(虛禮)와 낭비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온정 담은 종이 연하장 사라져

직장에서는 누가 카드와 연하장을 가장 많이 받았느냐에 따라 대인 관계의 척도를 가늠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사라진 옛 추억의 풍경이 돼 버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러 색깔의 싸인펜으로 정성들여 직접 그린 연하장을 친구나 선생님들 그리고 국군장병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종이 연하장은 사라지고 전자메일과 핸드폰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국적 불명의 이모티콘으로 새해 인사부터 시작해 주요 안부를 묻는 단자의 역할을 하고 있어, 편리성만 좇아 온정이 식어가는 세태가 아쉽게 느껴진다. 전자 우편은 삭제 기능 하나로 동시에 사라져버리지만 정성과 성의가 담긴 편지나 연하장은 오랜 세월 정을 돈독히 해온 소중한 인연 뿐만 아니라 시대의 향기와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연하장의 모태인 명함(名銜) 세배는 문안단자로 재첩(再帖·두 번째 페이지) 초항(初行·첫 줄)의 말단(末端)에 직함과 성명을 쓴다. 이는 오늘날 서로의 자신이 직접 쓴 글로 문안을 묻는 연하장이나 특별한 날에 보내는 문안 전자메일과 같은 개념이다.

궁중에서는 매년 정조(正朝·설날) 뿐만 아니라 대전탄일(大殿誕日·임금의 생신), 동지(冬至·섣달 그믐날) 및 모든 경례(慶禮·공경스런 의식이 있는 날)에 있어 관료들은 문안단자를 임금에게 올렸다.

민간에서는 정월에만 윗사람의 집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 집에서는 소반(小盤·작은 상)에 문안단자를 받았다.

특히 사대부 가에서는 사랑방 마루에 세장(歲帳·방명록)과 벼루·붓을 마련해 두어 부재 중 방문한 손님의 방명을 적게 했고 부재 중에 세배 온 분의 명함(名銜)을 집어넣는 상자를 놓아두기도 했는데 이 상자를 세함(歲啣)이라 했다. 이는 전자우편이나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부재 중에도 문자보관함에 기록돼 열람을 할 수 있는 기능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조선시대 중류 이상의 부인네들은 초사흘이 지나 문안비(問安婢)라 해 여자 종을 곱게 차려 입혀서 인사 드려야 할 어른들을 대신 찾아 명함을 전하고 문안 인사를 올리게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문안비의 단장을 경쟁적으로 했다는 점인데, 잘 차려입은 문안비를 보면 서로 뉘댁 문안비인가를 물어 그 집 마님의 영예로 돌리고 그 가문의 영화를 그로써 평가하고 했으니 이 날 호사를 한 사람은 단연히 여종이었다.

새해 인사를 올리는 문안단자는 손수 먹을 갈아 붓으로 정성을 쏟아 쓴 육필(肉筆)인 만큼 사람다운 따뜻한 체온이 오고갔으나 글을 쓸 줄 아는 식자층(識者層) 만이 쓸 수 있는 특권 계급의 상징이기도 했다.

손수 쓴 편지로 정 나눴으면

이런 전통적인 문안단자 풍속은 한말 이후 우편제도가 생겨나면서 점차 사라졌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행했던, 새해 축하 인사를 위한 연하전보 및 연하우편(카드)이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공을 초월해 도착 메시지음과 함께 다수에게 문자로 인사를 전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 민족의 전통 풍습에는 음력 설을 지낸 후 정월 보름까지는 미처 세배를 드리지 못한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려도 크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지만 사회가 변화되면서 이러한 일은 옛 일처럼 돼 가고 있다.

금년 설에 폭설로 고향을 찾지 못한 분들은 주말을 이용해 웃어른이나 가까운 분들에게 편리한 핸드폰 문자 문안 인사 보다 손수 쓴 문안단자(편지)를 보내거나 자신이 문안비가 돼 직접 인사를 드리고 서로의 따스한 정을 도탑게 나누며 한 해를 설계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