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이제 서야 가슴 아파하는 남편의 심정을 이핼 수 있다. 한없이 슬퍼하는 자식들의 얼굴도 보인다. 자기 손으로 판 무덤이 보인다. 모든 화근은 취직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자.’

직장을 그만 두는 것으로부터 새 생활은 시작돼야 한다. 무엇보다 남편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청주로 이사를 가든지, 대전으로 가게를 옮겨오던지, 양단간에 결판을 내자. 아직 각 방을 쓰며 살 나이는 아니다. 남의 남자를 훔치는 일에 열중하다보니 남편을 도둑맞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힘들겠지만 노력하면 될 것 같다. 남편이 문제다. 여직원과의 관계가 너무 오래됐다. 그렇더라도 노력은 해봐야한다. 매일 청주로 출근해서 가게 일부터 배우자.

“24시간 붙어있는데 어떻게 하겠어?”

남의 회사에 가서 눈치 보며 근무하느니 차라리 남편 일을 돕자.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자. 다들 막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막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막사는 핑계를 찾으려고 하지 말자.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비정상적으로 사는 문제점을 깨닫자. 지금쯤 남편은 온갖 상상을 다하며 거리를 헤매고 다닐 것이다. 다신 남편을 거리로 내몰지 말자.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춤판을 헤매고 다녔을까? 다 내 탓이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혜원은 외출복을 벗어놓고 시장바구니를 짚어든다. 운동화를 신으며 생각한다. 오늘 저녁엔 해물탕을 맛있게 끓여 놓고 남편을 가다리자. 모처럼 소주를 마시면서 하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완수 씨 일도 사과하자. 남편은 날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십 여 번씩 완수 씨하고 통화한 기록을 열람했다면 별별 상상을 다했을 것이다. 버선목처럼 속을 뒤집어 보여 줄 수도 없으니 어떻게 결백을 증명하지.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고,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도 있다. 

‘남편한테 편지를 쓸까?’

왜 내가 춤을 배우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완수 씨를 만나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편지로 쓸까? 여직원과 놀아나는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외로웠다고 털어놓자.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쓰자.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춤을 배웠다고 고백하자.

수많은 남자로부터 유혹도 받았지만 잘 버텼다고 쓰자. 그래도 못 믿겠으면 삼자대면을 해도 좋다고 하자. 혜원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란다. 그렇게 한다고 증명이 될 수가 없는 문제라는 걸 깨닫는다. 남편이 죽기 전까지는 의심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일시적으론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고 도질 병이다. 같이 살 수도, 이혼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막막하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와 남편의 바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서류 하나를 발견한다.

‘이건 이혼장 아냐?’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도장만 찍어서 법원에 제출하면 끝난다. 이혼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마을을 돌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춤을 배우면 사주팔자가 바뀐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이 용한 점쟁이의 예언처럼 적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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