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남자의 숨소리가 가빠진다.

“뭐가요?”

“남편이 우리 사이를 눈치를 챘어요.”

“네?”

수화기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브레이크 밟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 혜원의 사정도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안될 만큼 급박하다. 심중에 있는 말을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나.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것만 알자. 이 정도에서 아무 일 없이 끝난 것도 다행이라고 여기자. 

‘회사는 어떻게 하지?’

물론 회사도 그만둬야 한다. 처음부터 회사는 생계유지를 위해 나간 게 아니었다.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갇혀 사는 것 같은 삶이 지겨웠다. 그래서 커튼을 치는 기분으로 취직을 한 것이다.

“당신 어디가?”

“엄마 언제 와?”

집만 벗어나면 궤도를 이탈한 열차에게 이유를 캐묻듯 질문이 따라다녔다. 그게 싫었다. 그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간 것이다. 모든 걸 회사로 돌리면 그만이다. 친구들하고 놀다가 좀 늦어도 그렇고, 뺑이들하고 돌다가 밤늦게 들어와도 물론 그렇다. 거기서 돌고 찍다가 만난 남자하고 등산을 가거나 데이트를 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상대가 없어서 그렇지, 진짜로 좋아하는 남자만 있다면 하루 이틀정도는 외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팔 핑계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오늘 특근해야 돼.”

“낼은 등산 가.”

“모렌 노조 행사가 있어.”

회사가 망해 없어지기 전까지 일은 계속되는 것이고, 핑계거리도 무궁무진하다. 얼마나 활기찬 생활인가?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의식까지 바뀌었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자유인이다. 남편도 자식도 다 잊는다. 독신녀가 된 기분이다.

다른 남자들이 매력 있는 중년여성으로 보아주길 바라고, 자신도 매력적인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않는다. 자기마음을 인습의 굴레에 가둬 놓지 않는다.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고, 아주 잘 생긴 남자친구를 사귀며 즐겁게 사는 친구를 보면 부럽다.

“나도 하나 소개해 줘.”

부탁을 하기도 했다. 취직을 하고 부터는 제2의 미스시절, 아니 독신시절을 구가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남편이 청주에서 자고와도 옛날처럼 밤을 꼬빡 밝히며 기다리지도 않는다.

물론 다소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자기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겠지 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자신이 평생 쌓은 성을 허물어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근무를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전화 받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그 남자겠지?”

상상하면서 낄낄거리는 게 즐거웠다. 일을 끝내고 춤판으로 몰려갈 때면 붕 뜨는 기분이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그게 남편과 자식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짓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이라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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