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뭐해? 오늘 장에 안가니?”

“오후에 친구들하고 목욕 가기로 약속했어.”

“그러니? 난 너하고 모처럼 등산이나 갈려고 했는데.”

“무슨 등산이냐? 유성 목욕탕으로 와.”

“은정이는 뭐 한대?”

“갠 역전 중앙시장이 단골이잖아.”

“그럼 오늘 목욕탕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네. 화영아, 너라도 이리로 와라.”

“난 선약이 있어서 못 가지만 정인이 주원이 영순이 옥남이는 다 그리로 갈 거야. 오늘은 우리 회사가 전세 낸 거 같을 거야. 그럼 건투를 빈다.”

등산은 알프스 카바레이고, 목욕은 한국관을 말하는 것이다. 역전 중앙시장은 중앙카바레를 말하는 것이다. 연습을 한 적은 없지만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 그 동안 늘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남편은 아무 관심도 없는 것처럼 TV만 보고 있다. 혜원은 화영이가 시간 맞춰 전화를 걸어 줬다고 고마워한다. 남편 혼자 집에 두고 나가기가 미안했다. 전화를 핑계로 나가면 된다.

혜원은 12시가 되자마자 남편에게 점심상을 차려주고 화장을 한다. 아주 곱게 아주 정성스럽게 화장을 한다. 완수 씨 같은 멋쟁이 남자를 만나려면 그에 걸맞게 차려입고 나가야 한다. 작년 가을, 보너스를 받았을 때 거금을 들여 백화점에서 산 정장을 입는다. 더위도 한풀 꺾였다. 아침저녁으로는 물론이고, 한낮에도 반소매를 입기가 서늘할 정도다. 오늘 유성 한국관 엔 주원이 정인이 영순이를 비롯해 회사 동료들이 다 몰려들 것이다. 각자 집에서는 목욕하러 간다고 해놓고 나올 것이다.

‘이게 얼마만의 외출이지?‘

무려 이주일 동안이나 못 다녔다. 그러니 얼마나 배들이 고팠을까? 한 주 동안은 야간을 하느라고 못 다녔고, 그 다음 주는 오후반이라서 못 갔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카바레에 장이 서는 오후 두세 시쯤만 되면 심란했다. 얼근한 취기가 그리운 술꾼처럼 안절부절 했다. 그럴 때마다 구성진 트로트가 그리웠다. 밤 10시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아직도 불이 켜진 카바레의 네온사인을 보면서, 막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만큼 중독 된 뺑이였고, 주기적으로 금단증세도 보였다. 이제부터 연휴라고 생각했을 때 맨 먼저 생각난 게 춤판이었다. 발이 저리도록 춤판을 누비고 싶다는 욕구였다.

‘이만하면 괜찮겠지?’

거울 속에 비친 혜원은 세월의 그림자를 감쪽같이 감췄다. 살짝 웃어본다.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입을 오므려 본다. 아주 예쁜 모습이다. 이 요염한 모습 때문에 남자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이다. 남편이 들어오더니 화장하는 혜원을 마땅치 않은 눈길로 바라보며 묻는다.

“어디가?”

“응.”

친구하고 목욕 가기로 했어요. 평소 같으면 그렇게 말했을 텐데, 얼버무리고 만다.

“어디 가는데?”

남편이 따지듯 묻는다. 그러면 본 병이 도진다. 조금만 더 거슬리면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다. 혜원은 모처럼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 남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완수 씨의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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