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점심이나 차려주고 훌쩍 나가면 되지만 내일하고 모레 이틀간이 문제다. 아무리 가기 싫어도 내일 오후엔 큰집에 가서 차례 지낼 준비를 해야 한다. 모레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까지 다녀와야 한다.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남편하고 다니지?’

휴가가 즐겁다는 기분이 사라지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노는 건 좋지만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싫다. 자유가 없다. 새처럼 훌훌 날아다닐 자유가 없다. 참는 수밖에 없다. 휴대폰이 몇 번 울리다가 끊긴다. 남편이 방문을 열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나간다.

‘누구일까?’

잘못 걸린 전화일 것이다. 요즘 별놈의 전화가 다 온다. 전화가 오다가는 뚝뚝 끊긴다. 궁금해서 걸어보면 다 바가지 쓰는 전화다. 휴대폰도 조심해야한다. 완수 씨가 전화를 걸 수도 있으니까 진동으로 바꿔놓자. 남편이 싫어지니까 얼굴을 보는 것도 싫다. 같은 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건 죽기보다도 싫다. 남편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어주며 풍장까지 쳐주어야 한다. 몸종처럼 붙어 다니며 온갖 심부름을 다 해줘야 한다.

‘남편 차를 타고 다닐 때는 휴대폰을 어떻게 하지?’

진동으로 죽여 놓아도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아주 꺼놓는 수밖에 없다. 누구한테 전화가 왔었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묵음으로 해놓자. 그러면 전화소리는 안 나지만 누구에게 전화가 왔었는지는 알 수 있다. 도대체 내가 놀고먹는 것도 아니고, 부부금술이 좋은 것도 아니다.

‘대체 무슨 권리로 몸종 취급을 하느냐 말야.’

처음부터 버릇을 잘못 들인 것이다. 지금부턴 어림도 없다. 나도 그곳에 가면 여왕이다. 당신 같은 배불뚝이 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 한다. 그건 당신이 현장경험을 통해서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다. 시숙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지난번 시어머님 생신에도 그 이야기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했다.

‘추석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다시 청주 생각이 난다. 화영이와 청주로 원정 갔던 날은 재수가 더럽게 없었다. 마수를 재수 없게 했는데  장소를 옮긴다고 잘 놀 수가 있겠느냐고 포기하고 앉아있었다. 춤판에서 팔리지 않는 여자처럼 청승맞은 건 없다. 대전이라면 차마 그렇게 청승을 떨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다 저장되었다가 결정적일 때마다 튀어나와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긴 청주였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하고 놀더라도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곳이다.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면 남편이 1층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쪽으로 쫓겨 오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이었다.

‘올 테면 오라 지, 이판사판이다.’

남편이 그렇게 하고 다니는데, 나라고 이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배짱이었다.

4층으로 도망쳐 올 게 아니라 남편 옆에서 당당히 놀 걸 잘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보다도 더 잘 생긴 연하남자를 꼬여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혜원은 그 정도로 독이 올라있었다.

사실 자신이 이러고 다니는 것도 다 남편 때문이다. 사업을 한답시고 일을 벌이기만 하면 여직원을 두었고, 여직원만 들어오면 귀신같이 따먹었다. 그런 이야기가 입질에 오르내리자, 아예 가게를 서울로 옮겨버렸다. 계집질 하느라고 있는 돈 다 까먹고는 노모를 모셔야 된다는 핑계로 몇 달 전 청주로 내려왔다.

요즘도 툭하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마다 시어머니 집에서 잤다고 핑계를 댔지만, 그 여직원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렇게 짐작하면서도 치사해서 따지지도 않는다. 까짓 춤판에만 가면 남자들이 지천을 하는데, 싸울 이유가 뭐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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