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오늘 장사 다했네. 마수걸이에서 이런 걸 만나다니….”

불독은 손을 들어 귀사대기를 올려붙일 듯하다가는 돌아선다. 멀어져 가는 불독의 뒷모습을 보며 혜원은 안도한다. 춤판이 아무리 여자들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불독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건방도 사람 봐 가며 떨어야 한다. 혜원이가 이런 상상을 하며 남편 말을 외면하고 있는데, 베란다 문이 벌컥 열린다. 남편이 불독보다도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다.

“내가 부르는 소리 안 들려?”

혜원이에게 거절당하고 쏘아보던 불독의 사나운 모습이다.

‘안 들리긴 왜 안 들려요. 다 듣고 있었죠. 그런데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집에 있는 신문도 자기 손으로 못 찾아 봐요? 내가 지금 놀고 있어요? 보다시피 그 동안 출근하느라고 못했던 빨래하잖아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다 토해놓고 싶다. 그러고 싶어서 미치겠는데도 말은 엉뚱하게 나온다.

“오늘 신문 안 오는 날이잖아요.”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왜 대답을 않는 거야?”

당장 잡아먹을 것처럼 쏘아보는 남편의 눈초리에서 혜원은 귀싸대기를 올려붙일 것처럼 쏘아보던 불독의 날카로운 모습을 본다.

‘여자가 약속이 있어서 못 놀겠다는 데 뭐 하는 짓에요?’

정색을 하고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질 못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창피 당하는 게 무서워서 참는다.

“당신 요즘 직장이니 뭐니 하며 밖으로만 나돌더니 많이 변했군. 밖에서 남의 남자하고 놀아보니까 남편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지?”

한참 독설을 퍼붓고는 문을 꽝 닫는다. 그 문 닫는 소리를 들으며 혜원은 통쾌함을 느낀다.

당장 물어뜯을 것처럼 사납게 덤비던 불독이 등을 돌리고 힘없이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혜원은 밀린 세탁을 대충해놓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눕는다. 남편하고 부딪치는 게 싫다.

그날 청주에서 남편을 피해 4층으로 도망쳤던 생각이 난다. 막상 도망을 왔지만 놀 사람이 없었다. 놀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면서 음악이나 듣고 가자고 마음을 달랬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상에 빠져들었다. 사실 혜원이도 많이 변했다. 전에 같았으며 남편이 요구하기 전에 미리 챙겼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할 필요도 못 느끼고, 그렇게 하기도 싫다. 자기보다도 못한 여자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다니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 남편이 우스워졌다.

‘근데 아까 그 말이 무슨 뜻이지?’

혜원은 뭔가가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느낌이다. 남의 남자하고 어울리다니? 처음엔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뼈가 있는 말이다. 불길한 상상이 스친다. 그렇다면 남편이 눈치를 챘단 말인가? 춤판에서 나를 보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세무서 다니는 남편 친구하고 노는 걸 보기라도 했다는 건가?

섬뜩하다. 그럴 리가 없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일 게다. 여자가 직장을 다니면 남의 남자하고 어울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걸 너무 예민하게 받아드리는 것이다. 자꾸 골치 아픈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기분 좋은 상상을 하자. 오늘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무려 9일 동안이나 논다. 오늘은 오후 2시에 유성에서 완수 씨하고 약속이 있다. 몇 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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