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여보!”

“탕! 탕!”

“당신 귀 구멍이 막혔어?”

“탕! 탕! 탕!”

혜원의 귀엔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카바레에 와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려 깔고 껌을 짝짝 씹으며 암내를 피우고 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사내들을 멸시하는 눈으로 보고 있다. 수놈들의 눈엔 여자가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천만에 만만의 말씀이다. 내 주위에 몇 놈이 꼬여있고, 그놈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남자의 직업이나 춤 실력까지 파악하고 있다. 그뿐 만도 아니다.

“차 한잔하실 까요?”

숨넘어가는 소릴 할 놈이 누구인가도 살피고 있다. 막상 밖으로 따라 나갔을 때 삼겹살을 살 놈은 누구이고, 회라도 살 놈은 누구인지까지도 계산하고 있다. 한 놈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올려다 볼 필요도 없다. 점퍼 떼기이니까…. 춤은 좀 잘 추겠지만 겨우 삼겹살이나 사고 당일치기로 어떻게 해보려고 할 놈이 분명하다.

‘지겨운 점퍼 떼기….’

혜원은 고개를 까딱한다. 남자는 머쓱하니 돌아선다. 그 모습이 남편하고 비슷하다. 작달막한 키에 배불뚝이까지도. 또 다른 놈이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다가온다. 망신을 당할 때 당하더라도 이 정도 여자하고는 놀아야겠다는 결연함이 보인다. 그 기개는 가상하지만 기개만으로 세상을 살수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겠다는 듯 혜원의 고개는 사정없이 까딱한다. 이유는 없다. 어떤 기준도 없다. 순전히 내 마음이다. 되돌아가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남자가 좀 까다로워 보인다는 점이다.

저런 놈한테 잘못 걸리면 신세 조진다. 평생 몸종 노릇이나 하며 살아야 한다. 저 놈 마누라도 지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러난다. 울컥 치미는 게 있지만 참는 모양이다. 저놈이 째려볼 때 혜원이가 같이 쳐다봤다면 분명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병신! 춤 세계가 이런 줄 몰랐단 말야?’

원래 춤판이라는 곳이 인간차별이 심한 곳이다. 기분 나쁘면 집구석에 가서 마누라하고 놀아라. 혜원은 갑자기 긴장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번에는 진짜 무서운 놈이 덤빈다. 불독처럼 생겼다. 불독 중에서도 아주 사나운 놈인데 목의 줄까지 풀려 있고, 주인도 보이지 않는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구두소리가 섬뜩하다.

“한번 놉시다.”

정중히 손을 내밀면서 의사를 타진하는 게 아니라 여자의 손부터 덥석 잡는다. 그 손에서 쇠 덩어리 같은 차가움이 느껴진다. 손을 잡더니 무조건 끌고 나가려고 한다.

“약속이 있어요.”

겁에 질린 혜원은 몸을 비튼다. 그래도 불독은 막무가내다.

“약속한 남자가 올 때까지만 놉시다.”

남자도 막무가내지만 혜원이도 필사적이다. 여자가 필사적으로 거부하자 남자도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눈을 부라리며 악담을 퍼붓는다.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혜원은 아무 말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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