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여보! 내말 안 들려?”

혜원은 물소리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빨래방망이를 집어 들고 사정없이 두들긴다. 방망이를 두들기면서 중얼거린다.

“바보 병신 등신 같은 놈! 넌 집에서니까 나한테 여보 소리라도 할 수 있는 거야. 바보 병신 등신 천치 같은 놈아.”

남편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그날 청주에서 본 남편의 바보 등신 천치 같은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자들 주위를 빙빙 돌며 눈치를 살피다가 겨우 손을 내밀었다. 여자가 고개를 까딱하며 거절하자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가는 처량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보 병신 등신 천치 같으니! 그렇게 바보 등신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느니 차라리 집에 있는 마누라나 잘 간수하지. 마누라는 허기지게 만들어놓고 감히 남의 여자를 넘보다가 그 망신을 당하냐. 바보 등신 천치 같은 놈아.”

그날 청주 춤판에서 본 남편 모습은 한마디로 상갓집 개 같았다. 여자 주위를 빙빙 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한 여자를 데리고 풀로어로 나갔다. 아주 감격한 표정이었다.

에베레스트의 최고봉이라도 정복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남편은 그 여자를 깍듯이 모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해서 낚아 올린 대어였으니 안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공주마마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모시고 나갔다. 풀로어에 나가서는 더 가관이었다. 무슨 외국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중하게 인사부터 했다. 혜원이가 보기에 그 여자는 한물간 여자였다. 너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남편을 보고 황당했던지 그 여자도 꾸벅 인사를 했다. 춤은 지르박부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위태위태해보였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박자가 맞지 않았다. 남편은 그냥 저냥 넘어 가려고 했지만 여자가 고개를 갸웃 둥하더니 춤을 멈췄다. 박자가 틀렸으니 다시 시작하자는 거였다.

“바보 등신 천치 같으니, 여자가 꼴값을 떠느라고 그러는 건데 남자가 그걸 따라하면 어떻게 하냐? 처음부터 단단히 버릇을 고쳐놔야지.”

남편은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도 못하고 다시 시작했다. 춤은 신사가 추는 것이고, 신사는 숙녀를 기분 나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변명할 것이다.

“신사 좋아하네.‘ 집에서 마누라에게 그렇게 해봐라. 임금님처럼 대접 받을 것이다.”

혜원이가 보기에도 춤은 잘 맞지 않았다. 남편은 어떻게든 춤을 맞춰보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그저 여자를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스텝이 맞던 틀리든 여자위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의 건방 끼가 발동을 한 건 블루스를 출 때였다. 남편은 스핀을 하려고 여자를 껴안았고, 여자는 그걸 남자가 장난을 치려는 것으로 알았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독사눈으로 쏘아보더니 손을 놓고 나가버렸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다소 기분이 나쁘더라도, 설사 장난을 좀 친다고 해도 춤을 추던 중간에 나가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쯤 됐으면 일진이 나쁜 날이려니 하고 포기했어야 했다. 미련 없이 바깥으로 나왔어야 했다.

그 자리에 멍청이 서있었다. 그 망신을 당하고서도, 이 여자 저 여자를 기웃거리며 손을 내밀고 다녔다. 초상집 개처럼 눈치를 보고 다녔다. 혜원의 빨래방망이에 힘이 들어간다. 밖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도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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