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부 뼈저린 후회

오늘부터 추석 연휴다. 어제 토요일은 12시에 끝났으니까 어제까지 치면 다음 월요일까지 무려 9일간이나 쉬는 것이다.

혜원은 모처럼 푸짐한 시간의 보너스를 받은 기분으로 들떠있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있으니까 좋다는 기분보다는 답답하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 남편과 같이 있으려니 도대체 난 이 집에서 뭐냐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여보 물 좀 줘.”

‘냉장고에 있잖아요.‘

라고 하려다가 모처럼 함께 있는 날이니 기분 좋게 해주자는 마음으로 물 한 컵을 갖다 준다. 그동안 밀렸던 일을 세탁을 하려고 하는 데 또 부른다.

“재떨이 어디 있어?”

“응접세트 위에 있잖아요.”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재떨이도 찾아다 준다.

“커피 한잔만 줘.”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을 만큼 심부름을 시킨다. 몸종이나 마찬가지다. 혜원은 커피를 타면서 남편을 쏘아보고 있다. 점점 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저런 배불뚝이가 감히 날 몸종처럼 부리다니! 만약에 저런 놈을 춤판에서 만났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입증 된 사실이다.

얼마 전 청주 춤판에서 우연히 만난 남편은 불쌍한 모습이었다. 형편없는 여자들에게 망신만 당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 같은 여자하고 함께 사는 것을 감사해야하고, 예수처럼 모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루가 다르게 배불뚝이로 변해가면 위기감이라도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가게 일이 바빠서 운동을 못한다면 집에서라도 운동 삼아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TV만 보면서 마누라만 시킨다. 단 한 가지도 제 손으로 하는 법이 없다. 전에는 그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참을 수가 없다. 혜원은 남편이 청주춤판에서 자기보다도 못한 여자들에게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나서부터 남편이 우스워졌다.

‘제가 무슨 권리로 날 몸종 부리듯 하냐 말야.’

남편에 대한 불만이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치밀어 오른다. 커피 한잔을 타다주고 다시 베란다로 나간다.

“여보, 신문 좀 갖고 와.”

‘이런 개자식이 있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남편의 잔혹성 때문이다. 마누라가 베란다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신문을 갖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잔뜩 짐을 지고 고개를 오르는 사람에게 보따리까지 들고 가라고 하는 격이다. 그렇더라도 옛날 같으면 참았을 것이다. 

“탁자위에 있잖아요.”

“안 보이는데….”

“참, 오늘 신문 안 오는 날이네요.”

신문이 없으면 하다못해 묵은 잡지라도 찾아다 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가 싫다. 수돗물을 더 세게 틀어놓고 못들은 척 한다. 물소리를 더 요란스럽게 내면서 남편 말을 무시한다.

춤판에서 놀기 싫은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엉뚱한 곳만 바라보는 식이다. 남편은 혜원의 미워하는 마음도 모르고 목청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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