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부 응징
여기까지 말을 한 두 여자는 가슴이 벅차올라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겠는 모양이다.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만 쉰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한을 토해내고 싶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뺑이들은 무슨 말이 나올까 하고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저도 물 한잔만 주세요.”
극도의 긴장감으로 입이 타서 말을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이거 드세요”
옆에 있던 선영이가 음료수 한 병을 손에 쥐어준다. 음료수 한 병을 다 마시고 나서야 진창을 향해 입을 연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젠 돈은 못 받아도 좋아요. 이대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다신 저 인간을 쫓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전 지금까지 천벌이라는 게 설마 있을까 했어요. 오늘 보니까 하늘도 있고, 천벌도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았어요. 저 인간이 천벌을 받고 꼬꾸라지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선생님이 이 일로 고생을 하신다면, 저희들이 끝까지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법정에 나가서 증인을 서라면 설 테고, 옥바라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 하나님 고맙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은혜를 갚지 못하면 자식한테라도 갚으라고 하겠습니다. 제 자식이 못 갚으면 귀신이 돼서라도 갚겠습니다. 하나님을 걸고 맹서하겠습니다.”
두 여자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자세로 진창에게 무릎을 꿇고 감사해한다. 진창은 두 여자를 멍하니 바라 볼뿐이다. 바라보는 마음이 슬프다.
“난 당신들을 위해 그런 게 아닙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겁니다. 당신들이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들한테 감사를 받을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진창은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인지,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는 것인지, 손수건을 꺼내들더니 얼굴을 훔친다.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뺑이들이 갈라지면서 길이 트인다.
진창은 그 길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겁에 질린 눈들이 쫓고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진창의 귓전에 노래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연, 차라리 재가 되어 숨진다 해도 아 - 너를 안고 가련다. 불나비 사랑…”
진창은 노래를 들으며 복수심을 불태운다. 불에 타 죽을 지라도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한 발짝 두 발짝 계단을 내려갈수록 노래 소린 희미해진다. 1층에 이르자 다른 음악이 들린다. 대머리 네 카바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고막을 찢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잔인하게 여자를 울린 제비가 천벌 받는 모습이 무서워서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뺑이들이 하나 둘 나오더니 춤판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간다.
까만 어둠은 깊은 상처를 감싸고, 요란한 음악은 신음소리를 빨아들인다. 춤판은 천연덕스럽게 무르익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