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부 응징

“뭐 좋은 일이 있다고 거긴 자꾸 가는 거야?

“춤으로 파멸되었으니 춤으로 보상 받는 수밖에 없잖아.”

이런 각오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춤을 배워도 슬슬 배운 게 아니다. 죽기 살기로 배웠다.

진작 배울 걸 잘못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질도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를 바꿔가지고 다니더니 결국 전문가한테 걸리고 말았다. 집 날리고, 남의 자식을 두 명씩이나 맡아 키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광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희멀건 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흰 옷을 입고 나타난다. 도인이 걸어오는 모습처럼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물레방아 슈퍼를 향해 휘청휘청 걸어온다.

그 남자를 발견한 두 여자가 쫓아가더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두 여자는 남자에게 무슨 말인지를 하며 사정을 하는가 싶더니 대성통곡을 한다. 남자는 매몰차게 두 여자를 뿌리친다. 그래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자 발로 후려 찬다.

정강이를 얻어맞았는지 비명을 지르며 나가자빠진다. 진창은 무슨 일로 여자들이 남자에게 매달리며 통사정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제 코가 석자인지라 멀건이 구경만 하고 있다.

“저 여자들 아직도 저러네….”

슈퍼 정씨가 내뱉는 말이다. 악착같이 따라붙는 두 여자를 잔인하게 뿌리친 남자는 천연덕스럽게 물레방아 슈퍼 앞을 지나가다가 정씨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건다.

“돈은 물레방아 사장님이 다 버는 거 같아요.“

“무슨 돈을 번다고 그랴? 날씨도 더운데 잠깐 쉬었다가 가.”

정씨 말에 남자는 환히 웃는다. 하얀 이가 가지런히 드러난다. 흰 남방에 흰 바지 차림이다.

키가 크고 눈이 서글서글한 게 사람 좋게 생겼지만 어딘지 모르게 독기도 있어 보인다.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돼요.”

몹시 급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목시계를 가리킨다. 정씨가 다시 묻는다.

“어디로 가는 겨? 1층? 그런데 저 여자들은 아직도 저래?”

“아니 4층, 미친년들이지 뭐.”

이런 말을 남긴 채 카바레 골목으로 사라진다. 진창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딘가에서 몇 번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누라를 찾으러 춤판을 누비고 다닌 지가 벌써 10년이나 되었으니 웬만한 뺑이들은 다 안다.

속은 몰라도 겉은 대충 다 안다. 아직도 두 여자는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다.

남자에게 구두 발로 차였으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몹시 아프기도 하겠지만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돈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 더 서러울 것이다. 진창의 눈길이 정씨에게로 옮겨가며 묻는다.

“왜 저러는 거유?”

“이곳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여자들도 좀 문제가 있지만 아까 그 친구가 너무 심한 거 같아.”

두 여자는 더 이상 울고 있어봤자 구해 줄 사람도 없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미호아파트 쪽으로 사라진다.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 위해 다리를 절면서도 빨리 걸으려고 애 쓰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창은 집 나간 마누라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까 그 남자 제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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