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부 응징

진창은 물레방아 슈퍼 앞에 앉아서 카바레로 장을 보러 가는 뺑이들을 구경하고 있다.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두서너 명의 친구끼리 히히덕거리며 가는 패들이 있는가하면, 부부나 연인 사이처럼 다정히 손을 잡고 오는 커플도 있다.

올 때는 같은 차를 타고 함께 왔으면서도, 차에서 내려서부터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멀찍이 떨어져 오는 내숭형도 있다. 남자가 먼저 차에서 내려 저만큼 앞서 걸어가면 여자가 슬슬 뒤를 따라온다. 이처럼 끼리끼리 삼삼오오 패를 져서 오는 뺑이들이 있는가하면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다.

직장에 출근이라도 하는 공직자처럼 당당히 걸어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떤 뺑이는 너무 자주 오는 게 미안한지 주차장 한쪽 귀퉁이에 차를 세워놓고는 뺑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피해서 숨어오기도 한다. 멀쩡한 대로를 놔두고 외진 뒷길을 돌고 돌아 구렁이 담 넘어오는 식으로 온다.

사직상가를 거쳐서 오면 시장 보러 오는 장꾼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얄팍한 마음이다. 하지만 시장사람들이 그렇게 어수룩하지는 않다. 금방 알아본다. 자기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장사를 해서 밥 먹고사는 장사꾼들이 춤추러가는 뺑이와 시장 보러 오는 고객을 구별 못 할 리가 없다. 슈퍼 정씨는 자기 네 가게 앞에 힘없이 앉아 있는 진창의 얼굴이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고 느낀다. 그게 다 춤바람 난 마누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복 없는 남자를 더러 보았지만 진창이처럼 박복한 남자는 처음이다.

조강지처가 춤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렸으면 그것으로 족한 게 아닌가? 새로 얻는 여자마다 말썽이었다. 춤바람에다가 사기성까지 있는 여자들도 있었다. 달랑 아파트 한 칸 있는 것까지 팔아가지고 날랐다.

‘그것만 이었다면 참을 수도 있다.’

결국 진창의 신세를 조져놓고 말았다. 그렇다면 아무리 박복한 남자라도 춤과 여자로부터의 수난은 끝이 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춤이 사주팔자를 바꿔놓는 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슈퍼 정씨는 진저리를 치는 표정을 지으면서 진창을 바라본다.

의기소침해 있는 진창에게 무슨 말이든 위로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며 다가간다.

“새 여자 아직 연락 없지?”

“…….”

진창은 묵묵부답이다. 뺑이 구경을 하는데 정신이  빠져서 잘 못 들었다는 표정이다.

“조급하게 생각 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봐. 애들을 둘씩이나 놓고 나갔는데 안돌아 오겠어?”

슈퍼 정씨는 애들 얘기를 꺼내놓고는 얼굴을 붉힌다. 말을 잘못해도 크게 잘못했기 때문이다. 조강지처가 낳아놓고 도망간 자식이 둘이고, 세 번째 여자가 데리고 들어와 놓고 간 애들도 둘이나 된다. 그러니 도합 넷이다.  어쩌면 그렇게 재수 없는 여자를 만날 수 있느냐고 한탄한다.

유료주차장에서 주차관리를 하고 있는 광호도 진창을 걱정하고 있다. 밀려드는 차들에게 주차증을 교부해주는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진창을 살핀다. 슈퍼 정씨가 진창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혼자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물가에 내어 놓은 아이처럼 조마조마하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춤과의 악연을 못 끊는 걸까?’

처복이 없는 것보다도 더 문제가 많은 것은 진창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조강지처의 춤바람 때문에 그렇게 속을 썩였으면 춤판엔 얼씬거리지도 말았어야 했다. 이열치열이란 말을 실험이라도 하려는 듯 점점 춤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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