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부 불편한 이웃

키다리는 막막한 기분을 느끼면서 4층 계단을 올라간다. 느닷없이 나타나 경리를 바꾸자던 대머리의 제의를 생각해 본다. 아직도 엉뚱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의 발길이 2층을 지나면서 동업을 하자는 제안을 생각한다.

역시 미끼라는 기분이 든다. 노름꾼이, 제비가, 꽃뱀이 처음부터 잡아먹을 것처럼 덤비는 법은 없다. 일정한 시기까지는 미끼를 맛보고 식욕을 느끼게 만든다. 덥석 미끼를 물때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목에 걸린 낚시를 빼도 박도 못할 지경이 돼서야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다.

대머리는 지금 그런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따라 계단이 더 높고 더 힘들다. 동업을 하다보면 의견충돌이 나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부딪쳐야 하는데 솔직히 대머리를 이길 자신이 없다. 키는 내가 더 크지만 힘도 더 세고, 배우기도 많이 했고, 발도 더 넓다.

더욱이 대머리는 조조처럼 살살거리는 모사꾼 아닌가. 난 우직한 고집뿐이 없다. 어떤 싸움이던 옳은 자가 이기는 법은 없다. 대머리와 맞붙었을 때 연전연패를 하는 건 불을 보듯 훤하다.

대머리는 그런 속셈으로 내가 미끼를 물때까지만 친절한 척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에 밑밥을 뿌리 놓고선 내가 덥석 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낚시꾼처럼.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료입장을 시킬 순 없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상황을 정리해보자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부터 생각을 해보자. 툭하면 찾아와 들쑤셔놓았던 대머리의 제안들을 분석해보자. 처음엔 후리를 없애자고 했고, 두 번째는 경리를 바꾸자고 했다, 세 번째는 동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느 것도 수용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 세 가지를 다 거부하면 지금처럼 죽기 살기로 싸움을 하는 수밖에 없다. 대머리가 무료입장공세를 취하는 걸 보는 것도, 뺑이란 뺑이는 다 그쪽으로 몰려가는 것도, 혼자서 빈집을 지키는 것도, 같이 무료입장경쟁을 벌이는 것도 다 죽을 노릇이다.

같이 맞장구를 친다고 해서 대머리를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4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힘들고 막막하고 지겹다. 이 건물에 한국관 카바레란 간판을 달고, 아침저녁으로 올라 다닌 게 벌써 10년이다. 오늘처럼 힘들고 지겨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젠 그만하고 싶다.’

그렇다고 청주사회에서 키다리가 대머리한테 패해서 쫓겨났다는 소린 듣고 싶진 않다. 죽어도 불명예 퇴진은 할 수 없다. 이 시간에 1층 대머리도 국일관 카바레 문을 열어놓고는 평소 습관대로 주변을 한 바퀴 돈다. 그 시간이 대개 낮 1시쯤이다. 카바레골목을 나와 우회전을 하면 정씨네 물레방아 슈퍼가 있다. 벌써 장이 선 모양이다. 늘 보이는 고정멤버들이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바깥을 힐끔거리고 있다.

“이 사장! 어디가? 이런 황금시장을 놓고 어디 가는 거야?”

한판 붙자고 유혹하는 건 슈퍼 정씨다. 그러는 정씨도 대머리가 정말로 고스톱 판에 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를 볼 때마다 인사처럼 던지는 농담이지만 판에 낀 적은 별로 없었다. 대머리가 한사코 화투판을 피하는 것은 고스톱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키다리가 가끔 끼는 멤버이기 때문이다.

마주치기가 싫었던 것이다. 오늘도 대머리는 슈퍼 앞에서 주춤하다가는 발길을 돌린다. 정씨네 슈퍼를 막 돌아서면 유료주차장이 보인다. 3개나 되는 카바레 손님들이 무료로 주차를 하는 곳이다. 그 입구에 아침까지 보이지 않던 현수막이 하 걸려있다.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지만 이상하게 눈길이 그쪽으로 간다. 그리고 왠지 불안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