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부 슬픈 여행

“줄 광고 하나 내려고 하는 데 얼마죠?”

“일주일에 세 번나가고 2만원입니다.”

“그럼 받아 적으세요.”

이렇게만 되면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충분한 수준은 아니지만 좀 나아지긴 할 것이다. 적게 쓰고 정직하게 살다보면 어떤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누군가가 느닷없이 나타나 이 땅을 팔라고 조르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무리 급해도 때를 기다리자. 목에 가시는 불편해 할수록 더 깊게 박히는 법이다. 그냥 저냥 살자고 하면 견딜 만 할 것이다. 물론 수십 억 원의 돈을 뿌리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나마 현상유지를 하며, 가정을 이끌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만약 저 땅이 진작 팔렸다면 난 그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벌었거나 훨씬 더 잘 살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다. 그 돈으로 사업을 하다가 망했을 수도 있고, 그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친구까지 잃었을 수도 있다. 돈 때문에, 가난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그 어떤 고민보다도 행복한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고 적응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창빈이가 밀어줘서 비탈길을 겨우 올라 간 노인은 아파트단지 그늘에 앉아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다. 뿌연 담배연기가 주름진 노인의 얼굴을 덮는다.

‘70세쯤 됐을까?’

긴긴 세월의 그림자가 깊게 파인 주름마다 가득하다. 그 길고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저 노인은 이런 노후를 맞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한 순간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결국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사람팔자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잘사는 것도 아니고, 놀고먹은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니다. 담배 한 모금을 맛있게 빨은 노인은 굽은 허리를 펴더니 다시 리어카를 끌고 간다.

비좁은 도로에 리어카가 들어서자 차들이 밀린다. 난리라도 난 것처럼 경적을 울려댄다. 보통 사람 같으면 미안해서 쩔쩔맬 것이다. 노인은 무표정하다. 죽일 테면 죽이라는 식이다. 저 노인도 처음에는 안 그랬을 것이다. 일 년에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하는 생업이다 보니 저렇게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으니까 상관치 않는 것이다. 그저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가는 것일 게다.

‘저 노인에게 묵묵히 견뎌내는 지혜를 배우자.’

이런 생각을 하며 창빈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온다. 제천역에 도착한시간은 오후 4시30분, 아직도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늘 여기만 오면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제천은 참으로 편리한 곳이다. 대한민국 어디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

중앙선 충북선 태백선이 교차하는 곳이다. 대합실에는 강릉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개찰을 하고 있다. 바로 그 옆에는 대구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청량리로 가는 열차도 20분 뒤에 있다. 물론 천안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충북선 열차도 1시간 후에 있다.

창빈은 주머니를 뒤져본다. 만 원짜리 몇 장이 손에 집힌다. 아침에 은행에서 십 만원을 꺼냈으니 8만 원정도 남아있을 것이다. 강릉 대구 부산 서울이 다 가고 싶은 곳이지만 이 돈으론 부족하다. 특히 제천에서 대구까지는 한 번도 못 가본 생소한 길이다. 태백선도 마찬가지다. 영월 정선 등을 거쳐 강릉에 이르는 길도 못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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