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부 슬픈 여행

소일 삼아 한다는 말에 창빈은 정신이 퍼뜩 든다. 소일은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은 아무런 준비가 없이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살았다. 그게 아니다.

소일 삼아 하는 거, 즉 노는 게 일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들고, 돈도 더 많이 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창빈은 자신의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땅을 외면한다. 보기가 싫다. 그런데도 눈은 자꾸 그 쪽으로 간다. 임대해준 땅에 사무실을 짓고, 공장을 짓더니 아예 살림도 차린 모양이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차들이 연신 들락거린다.

월세 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참으로 인연은 묘하다. 맨 처음 저들이 이 땅을 세 달라고 했을 때, 거기에다가 공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망설였던가.

세준 땅에 건물을 짓게 하면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아서 속을 썩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증까지 하고 수선을 떨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을 칠 때도 먹고는 살 수가 있었다. 도심에 어엿한 빌딩을 짓고, 세를 주었던 사람들도 제때 세를 못 받는다고 아우성이었다.

세들 사람이 없어서 건물이 텅텅 비어 있었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세든 땅에 건물을 지었으니 나갈 수도 없었고, 세를 내려 달랠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먹고 살 수는 있었다. 그런데도 누가 땅을 사려고 한다거나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서면

‘임차인이 못 나가겠다고 버티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저들 때문에 힘든 시절을 잘 넘겼다고 감사해하자. 앞으로도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생계는 유지할 수 있다. 그것도 다 저들 덕분이다.

당분간은 목에 가시를 빼내려고 생각하지 말자. 누구나 한두 개의 가시를 안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는 목에 가시를, 누구는 눈에 가시를, 또 누구는 손톱 밑에다가 그 날카로운 가시를 끼고 산다. 그렇지만 못 참겠다고 몸부림치지도 않고, 그냥 저냥 살아간다.

누군들 아프고 불편하지 않겠는가? 이것만 빼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안 들겠는가?

그렇지만 내색도 않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고, 생명이 있는 한 그 고통은 계속된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말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금씩 풀어나가자. 목에 가시를 한꺼번에 다 빼내려 하기보다는 숨통부터 틔워 놓자.

저 땅의 세를 한꺼번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다소 여유 있는 땅을 쪼개서 다른 사람한테 세를 다시 놓으면 지주인 내 수입도 늘고, 임차인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모두가 현상유지는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땅을 팔기 위해, 아파트를 짓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자.’

창빈은 오늘 이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여기 온 성과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온 김에 아예 다 처리해 놓고 가자고 작정한다.

‘공장에 전화부터 해볼까?’

지난번에 임차인을 만났을 때 그런 의향을 타진한 적이 있었고, 반승낙까지 받았으니까 세들 사람을 구하는 문제만 남았다. 창빈은 생활정보지 하나를 빼들고 한참을 살피다가 전화를 건다.

“교차로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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