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부 슬픈 여행
찾아오는 친구도 없다 싶으면,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신문을 읽고, 아침을 먹고 나서는 출근하는 사람처럼 사무실로 가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온종일 집구석에서 쑤셔 박혀 사는 건 답답하다. 놀아도 뭔가 타이틀이 하나 있어야한다.
“뭐가 좋을까?‘
신문기자 출신이니까 언론사 간부 타이틀이 제격이다. 신문사 논설위원쯤으로 타이틀을 걸어놓고 일주일에 한두 편씩 칼럼을 쓰면 좋겠다.
자기가 쓴 글이 신문에 나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며, 은근히 친구들에게 뻐기기도 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나이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그런 일을 하기가 가장 좋을 때다.
아직도 저 땅은 팔일 가능성이 없다. 다 늙어 꼬부라진 뒤에 땅이 팔려 돈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랴. 철지난 해수욕장이고, 막 내린 연극무대이고, 장꾼들이 철시한 장터이고, 버스 떠난 정류장 아닌가.
한 노인이 공사장 주변에 흩어진 신문지나 빈 병 등을 주워 리어카에 싣는다. 이젠 됐다 싶은지 출발하려고 한다. 짐이 너무 무거운 탓인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창빈이가 보기엔 짐이 많은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할아버지! 제가 밀어 들릴까요?”
“고마워유.”
창빈이가 뒤에서 밀자 리어카는 쉽게 움직인다.
“노인양반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세요?”
“누군 하고 싶어서 하나요?”
무슨 말인지를 더 하려고 하다가는 입으로 삼킨다. 쓸쓸히 웃고 만다. 자식이 없거나, 있어도 본 척도 하지 않는다는 소릴 하고 싶을 것이다.
“몇 월생이세요?”
“8월에 났어유. 근데 왜 유?”
뭘 볼 줄 아느냐는 질문이다. 금인(金人)이 분명하다. 금인이 가을에 낳으니 군겁쟁재 사주다. 자기뿐이 모르는 성격이다. 이기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마누라가 견뎌내지 못 했을 것이다. 재산도 남아나질 못했을 것이다.
“혼자 사시죠?”
“그걸 어떻게 알아유?”
“다 아는 방법이 있어요, 얼마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네요.”
“정말유?”
“두고 보세요.”
“늦게라도 팔자가 좀 펼라나?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희망이 스친다, 그것도 순간이다. 이 나이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느냐는 절망감이다.
노인의 쓸쓸한 웃음 속에 자신의 외로운 미래가 보인다.
“이렇게 하시면 하루에 얼마나 버세요?”
“돈은 무슨 돈. 그냥 소일 삼아 하는 거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