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내수읍에 가면 50년전 발동기가 있다]-세교1리 구입때 모습 그대로 전시
수십년 전에는 농사 효자 역할 톡톡
요즘 사람들보면 전쟁 무기로 오해

   
 
  ▲ 충북 청원군 내수읍 세교1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 디젤발동기를 마을주민 이재수씨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작동해 보고 있다. 오진영기자 photo@ccdn.co.kr  
 

‘휘익∼ 휘익∼ 탕탕탕’

수십년 전 시골마을에서 새벽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디젤 발동기의 요란한 소리다.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우리들의 머리 속에 아득한 풍경으로 박제됐다.

등유를 연료로 구동축을 회전시키는 디젤 발동기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거나 전력이 약한 시골지역에서 전기대신 양수기와 권양기 등을 돌리는 기계다.

초ㆍ중ㆍ고생이나 대학생들에게 디젤 발동기를 보여주면 육중한 무게와 도무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부속품들의 배치, 대포를 연상케 하는 모양새로 마치 전쟁터에 쓰이는 장비로 오해할 정도다.

이런 아리송한 기계를 충북 청원군 내수읍 세교1리 마을에 가면 볼 수 있다.

나이는 50세 정도로 반세기 가까이 사용했다. 모양새도 투박하다. 불빛 없는 밤에 보면 깜짝 놀라기 십상이다.

세교1리 마을에 이 기계를 1961년 구입당시 원형 그대로 전시해 놨다. 50년 전 농촌마을의 아련한 풍경을 아이들에게 아로새기기 위해서다. 

이 디젤 발동기는 1960년부터 2000년까지 인근 석화천 양수장에서 양수기를 통해 ‘오련이 뜰’ 논까지 물을 대는데 사용했다. 500마지기(약 33만580㎡)가 넘는 ‘오련이 뜰’은 이 지역주민 40가구 100여명이 농사를 지으며 생활 터전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양수기만 이용해 냇가에서 논까지 물을 공급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전기세도 비싸고 전력도 매우 약해 발동기를 사용해 양수기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디젤 발동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 서너명이 양쪽으로 갈라선 다음 경운기 시동을 걸듯이 1m 가량의 시동축을 돌린 뒤 2대의 양수기에 피대(벨트)를 걸어 사용했다.

시동을 처음 걸때는 물을 끓여다 붓던가 불방망이를 만들어 시동을 걸어야 할 만큼 힘이 들었다. 얼굴이며 옷이며 손까지 검은 기름으로 온통 까맣게 되도록 시동을 걸면 기차처럼 뿌연 연기를 강하게 뿜으면서 양수기를 통해 냇가의 물이 논까지 공급된다. 이 물로 매년 풍작을 이뤘다. 기름때 묻고 지저분한 디젤 발동기였지만 농사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이었다.

28마력을 자랑하는 이 디젤 발동기는 (주)조양에서 제작한 것으로 무게는 2t에 달했다. 고장이라도 한번 나면 마을 주민들이 모두 고생했지만 이 디젤 발동기는 한 번도 속을 태운 적이 없다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마을 주민들은 기억했다.

변종상 노인회장(75)은 “추운 겨울 새벽에 따뜻한 이불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부터가 보통일이 아닌데 마치 허리가 휘어지는 듯 한 디젤 발동기 시동작업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만큼 힘겹고 괴로웠던 일”이라며 “몇 번의 재시동 끝에 가까스로 시동이 걸릴 때쯤이면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서너 번 정도 고생을 하고 나서 시동이 걸리면 요란한 발동기소리와 함께 매캐한 디젤연기가 나면 잠자던 가족들이 거의 깨어날 정도로 시끄러웠다”고 추억을 더듬었다.

김장완 이장(55)은 “요즘은 어디를 가든 전기시설이 없는 곳이 없다”며 “전시된 발동기는 하나의 고철에 불과해 보이지만 후세들에게 수십 년 전 농민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자 신기한 타임머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석화천 양수장에서 마을회관 앞 1평 남짓한 곳에 전시된 ‘디젤 발동기’를 깨끗하고 예쁜 한옥으로 꾸며 후세들에게 옛 농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게 이제 남아 있는 주민들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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