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부 슬픈 여행

눈을 감고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 여자, 이 여자, 저 여자가 다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 남편들이 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올 것만 같았다. 모텔에 들어 갈 때 본 놈의 눈빛도 이상했다. 모텔 방을 청소하던 아줌마도 수상했다. 모텔을 나올 때 본 놈도 의심스러웠다. 그런 연놈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몽둥이 뜸질을 할 것만 같았다.

‘그 망신을 당하고도 또 거길 갈 순 없다.’

당연히 발을 끊어야했다. 그놈의 목에 가시가 사람을 꼼짝도 못하게 옥죈다. 지금까진 춤판에 가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당장 발을 끊으면 뭘 하지?’

무엇을 하며 긴긴 여름날을 보내느냐는 게 문제였다. 무엇이든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야하는데,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놈의 목에 가시 때문에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그 가시를 목에서 빼내야만 살길이 트인다. 목에 가시를 빼낼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 창빈은 제천엘 가는 중이다.

가시를 빼낼 수 있는 여건은 많이 갖추어졌다. 창빈의 땅 주변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주공에서 2천 세대 아파트단지를 만들어 입주까지 끝냈고, 바로 그 옆에는 15층짜리 아파트도 신축중이다. 한 달 전에 가보았을 때는 4층까지 올라가있었다.

‘몇 층이나 더 울라갔을까?’

이런 기대를 갖고 간다. 당초 그 아파트는 주공보다 먼저 착공했지만 부도가 났다. 물주를 새로 구해 공사를 하다 보니 늦어진 것이다. 이제 목에 가시를 뺄 수 있는 여건은 거의 구비됐다. 누군가 나타나 아파트를 짓겠다고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땅은 우선 그냥 사용하고, 분양이 되는 대로 땅값을 정산하는 조건을 제시해도 작자가 없다. 파격적인 조건이니까 거저먹으려고 덤비는 녀석들은 더러 있었다. 제 돈은 한 푼도 안 들이고, 주둥아리로만 풍장을 치려고 들었다. 사기꾼 비슷했다. 자칫 목에 가시를 빼내려다가 목구멍이 찢어질 위험성도 있어보였다.

열차는 충주를 지나 제천으로 향하고 있다. 창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다. 충주에서 제천 사이에서 펼쳐지는 절경을 보기 위해 창빈은 창가로 자릴 옮긴다. 열차는 삼탄역에서 잠시 머문다. 그 빼어난 경치 때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곳곳에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 있고, 아름다운 계곡마다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른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온갖 시름이 다 가신다.

‘저 물의 힘은 무엇일까?’

나를 포기하고 무조건 적응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속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내력이다. 그게 바로  물의 힘이다. 그 힘 때문에 저 작은 물이 모여 냇물을 만들고, 다시 강을 이루고, 마침내 망망대해를 만드는 것이다.

창빈은 갑자기 신비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떨어진 물방울이라도 다 바다로 흘러가도록 되어있다. 그런 자연의 이치가 신비스럽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되어있는 게 그 비법일 것이다. 모든 물이 바다로 흐르도록 지형을 만든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물이 천하무적의 힘을 갖기 위해선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물만이 갖고 있는 변화무쌍한 속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은 언제나 물로만 있지는 않는다. 기체로 변해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쇠보다도 강한 고체로 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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