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의 죽음을 슬퍼하던 여자가 남자의 장례를 치른 후 목숨을 버렸다. 나도 따라가겠다던 그녀의 통곡이 진실일 줄은 아무도 짐작치 못했을 것이다.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자살을 택한 모진 남자를 따라가다니. 결국 저를 팽개치고 간 몹쓸 인연인데, 이런 여자도 있구나 싶어 기사를 확인하는 눈동자가 커진다.

자살을 택한 장소가 약혼자의 시신이 있던 병원 영안실 앞 주차장이란다. 영안실 앞 나무에 목을 맨 그녀의 선택이 어쩐지 떠난 사람에 대한 원망과 시위로 여겨진다.

혀를 차고 지나치는 그녀의 죽음이 만일 조선시대 여인의 결단이었다면 그녀의 처신은  가문을 빛낸 덕행이다. 

아들은 충신으로, 딸은 열녀로 키우고자 했던 유교적 사고는 여자를 철저히 남편에 예속시켰다.

아내가 남편을 온전히 따라야 함을 이르는 유교의 기본적 덕목인 열(烈)은 남자들의 철저한 이기심에 의해 갈수록 경직되어 여자를 묶는 족쇄가 됐다.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인데

남편이 살아 있을 시엔 마치 상전처럼 모시며 섬기다가 남편이 죽으면 평생 상복을 입고 수절하라 했다.

자결을 드러내어 강요하진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자살해준다면 더 바랄 것 없는 열녀의 표상으로 칭송했는데, 관료를 등용함에 있어 정절 여성의 자손 여부를 필수적 조건으로 삼는다는 여성잔혹사가 성종 때 펴낸 ‘경국대전’에 증거로 남아있다.

남편을 따라 자결한 열녀가 생기면 양반가는 더 없는 가문의 영광이 되었고 상민이나 천민 층에서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을 잡았다는 오명아래 구박과 눈치로 서러운 게 과부의 처지다.

그런데 집안의 신분이 격상한다며 암묵적으로 자살을 강요당했으니, 제 한 목숨 버려 집안을 살리고자 목숨을 버리는 일이 벌어질 만 했겠다.

백번 양보하여 죽은 남편을 따라가도록 한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치자. 그보다 더 억울한 여성 학대가 태연히 자행되었는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성에게 희롱을 당했어도 목숨을 끊으라는 협박을 받았다.

설마 그 정도였으랴 싶지만 불한당에게 손목을 잡혔다고 지레 질려 투신자살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재혼하면 자손의 벼슬길을 막겠다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중종 때는 여성의 개가를 범죄로 단정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엔 과부의 재혼이 전혀 시비꺼리가 아니었다.

고려 시대에도 수절한 여인을 왕이 열녀로 정표하는 예가 있었으나 남편이 죽은 후 아내가 홀로 지내는 일이 워낙 드물었기에 왕이 직접 나서서 번잡을 떨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에는 이러한 악습이 없었다.

이를 지적하자 조선 시대의 대표적 실학자인 이수광은 “중화의 풍속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미속”이라며 여론을 일축 했다.

예나 지금이나 제 편한 대로 말을 만드는 정치가의 탄력적 사고에 쓴웃음이 지어진다.

서양의 경우 열녀보다 열부를 찾기 쉬운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죽은 아내를 찾아 저승까지 간 오르페우스(Orpheus) 설화다.  

아폴론에게서 음악을 배운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시인이며 음악가로 칭송되는 전설적 리라의 명인이다.

그의 처 에우리디케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해 도망치다 독사에게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이승으로 다시 데려오겠다는 결심을 하고 저승으로 내려간다.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명계로 내려간 그의 연주에 형을 받던 지하세계의 영혼들은 고통을 잊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

저승의 신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도 음악에 감동하여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무엇이 그녀를 죽게 했나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뒤 따라오는 아내를 절대 돌아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안한 남편은 당부를 어겼고 아내는 저승으로 떨어졌다.

다시 아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그 후 여성 대신 소년들을 탐닉했다.

아무리 유혹해도 넘어오지 않자 분노한 트라키아 여인들이 그를 찢어 죽였다는데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동성애자에게 내린 천벌이라 경고한다.

조선시대의 아내는 남자들이 만든 악습의 희생양이었고 그리스의 남편은 아내만을 생각하다 여인들의 손에 죽었다.

약혼자를 따라 죽은 우리 곁에 살던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죽지 않았을까. 버림받은 상처가 너무도 아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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