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충북의 색깔을 찾자 ①정치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 특징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을 일컬을 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충청도를 비하할 때도 많이 쓰이는 이 표현. 충청도 중에서도 충북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쟁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대처럼 흔들렸다고 해서 줏대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충북지역 사람들은 그러나, 흔들린 게 아니라 실리를 찾은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납득시킬 만한 근거를 쉽게 대지 못한다. 본보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교육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충북의 색깔을 분석하고 분야 별 발전 가능성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정국 주도력 약하지만 쟁점마다 ‘캐스팅보트’ 역할 담당
양측, 끊이지 않는 러브콜… 실리 추구 선택 폭 자유로워
지역출신도 프리미엄 기대못해 “선거 승패 가늠자” 평가

간판만 달고 나오면 당선되는 영·호남과 달리 충청권에서 어느 정당의 싹쓸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충북과 대전, 충남은 충청권으로 한데 묶이지만 지역 별로 현안 사업에 대한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것은 물론 각 정당이 미치는 영향력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작은 이슈에도 지역 민심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이는 선거 결과에서 흔들린 듯 안 흔들린 충북만의 독특한 표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속내를 들여다보기 힘들다.

그러나 영·호남 사이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담당하며 이들 지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정·견제하며 이들 지역으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는다.

영·호남 어느 지역에서 압승을 거둔다 해도 충청권 표심을 얻지 못하면 결국 정권 교체나 정국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청 출신 주자에게 표를 주기 보다는 실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부터다.

전두환 등 신 군부에 의해 정치 활동을 금지 당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이 때 사실상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공화당을 창당해 지역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민정당)은 전국적으로 828만2천738표를 얻어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민주당)이 633만7천581표, 김대중 전 대통령(평민당)이 611만3천375표 등을 얻은 반면 김종필 전 총재는 182만3천67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때부터 충북 지역만의 색깔 있는 표심이 보였다.

김종필 전 총재는 충남(대전 포함)에서 69만1천214표를 획득하며 40만2천491표를 얻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크게 앞질렀다.

전국 득표율이 8.1%에 불과했지만 충남에서는 6배에 가까운 45%를 득표하며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반면 충북에서 김종필 후보는 10만2천456표를 얻어 35만5천222표를 얻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물론 21만3천851표를 획득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까지 밀리며 체면을 구겼다.

이 당시 충북에서는 후보자의 출신 지역이 충청도냐, 아니냐가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한 것이다.

충청권의 다양한 이해 관계는 다음 대선인 14대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3당 합당으로 김종필 전 총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민자당으로 출마한 김영삼 후보는 충청권 모든 지역에서 13대 대선 때 자신이 얻은 표보다 많은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영삼 후보는 대전에서 20만2천137표를 얻어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민주당)(16만5천67표), 정주영 현대그룹회장(13만3천646표) 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또 충남 35만1천789표, 충북 28만1천678표로 13대 대선보다 충남에서는 20%포인트 정도, 충북에서는 10%포인트 정도 더 득표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충청권이 김종필 전 총재와 손을 잡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전에서 16만5천67표, 충남 27만1천921표, 충북 19만1천743표를 각각 획득하며 고른 지지를 얻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에서는 충북에서 8만3천132표를 얻는데 그쳤으며 충남(대전 포함)에서 19만772표를 획득했다.

또 국민당 후보로 나온 정주영 회장도 대전 13만3천646표, 충남 24만400표, 충북 17만5천767표 등 전국 득표율 보다 높은 지지를 충청권에서 받았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가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에서 생각했던 만큼으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충북과 대전, 충남 등 충청권이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기 보다 현안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 관계를 표출한다는 분석이다.

1997년 15대 대선은 충청권으로서는 어느 대선보다 관심을 끌었다.

DJP 연합으로 충청권을 끌어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국민회의)과 이회창 자유선진당총재(한나라당 후보·충남 예산),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충남 논산) 등 충청권 출신 또는 이해 관계가 격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1천32만6천275표를 획득하며 993만5천718표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39만557표 차로 힘겹게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대전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30만7천493표를 획득한 반면 이회창 후보는 19만9천266표를 얻었다.

또 충남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48만3천93표로 23만5천457표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두 배 이상 앞섰다.

그나마 충북에서 이회창 후보가 24만3천210표를 얻어 29만5천666표를 획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소 게임을 펼쳤다.

충청권에서만 이회창 후보가 40만8천319표 뒤진 것으로 단순히 충청권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작용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충청권 기반이 전무하면서도 충청권 민심을 휘어잡는데 성공했다.

역대 다른 대선에서와 달리 김종필 전 총재는 물론 충청권 어느 세력과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충청권 민심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50% 이상의 몰표를 몰아주며 승리의 발판이 됐다.

17대 대선에서는 세종시 원안 추진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했다.

이회창 총재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충청권 민심 잡기에 나섰지만 지역 이익을 고려한 충청권 표심이 이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 줬다.

이 대통령은 대전에서 24만8표를 획득하며 19만5천957표를 얻은 이회창 총재를 물리쳤다.

또 이 대통령은 충북에서 28만9천499표로 16만2천750표를 얻은 이회창 총재를 물리친 데 이어 충남에서도 31만3천693표로 30만4천259표를 획득한 이 총재를 따돌리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충청권에서 지역주의 맹위를 떨친 적도 있다.

1995년 김종필 전 총재가 민자당을 탈당한 후 자민련을 창당,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충청권에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1995년 6월에 치러진 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은 충청권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 최각규 강원도지사까지 당선시키며 맹위를 떨쳤다.

이에 앞서 4월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련은 대전 지역(7석)을 싹쓸이했으며 충남(13석 중 12석), 충북(8석 중 5석) 등에서도 차지했다.

그러나 2000년의 제16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 인원(20석)을 당선시키지 못한 데 이어 2004년의 제17대 총선에서도 지역구에 4명의 의원을 내는 데 그쳐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자민련은 당시 총재였던 김종필이 총재에서 물러나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등 부침을 거듭했다.

이후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전 대표 등이 2008년 2월 1일 자유선진당을 창당, 18대 총선에서 충청권에 자유선진당 바람을 일으키며 충남 10석 중 8석, 대전 6석 중 5석 등을 휩쓸었다.

충북은 대전·충남과 다른 지역 정서를 보이며 통합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 선진당이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했다.

충청권은 독자적으로 정국을 주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해 지역의 실익과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유연한 정치색을 띠고 있다.

특히 충북은 충청권 다른 지역과 달리 중앙에서 더 소외돼 있는 것은 물론 뚜렷한 대표 정치인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지역의 이념보다는 실리를 좇는 새로운 지역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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