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도층의 한글 무시와 영어 숭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나 국회, 대학, 전문단체 등 어디를 막론하고 영어 사용이 유행병처럼 번져 이 현상을 방치하면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그랜드 바게닝이라는 용어를 청와대가 앞장 서 쓰고 유력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국책 과제 이름도 영어 투성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들의 진단서에 영어로 된 의학 전문 용어가 그대로 쓰인 지 오래이고 과학, IT 등 각 분야의 용어가 영어로 통용되면서 한글은 조만간 조어(助語)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지도층의 한글 무시·영어 숭배, 도 넘어

한글날을 기념하는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근년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 흡사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자들이 횡행하던 양상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제 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겨 언문이라 하고 외국말을 진서(眞書)라며 한문을 숭배하며 한문으로 글을 쓰고 머릿속은 중국의 역사와 인물에 관한 지식으로 가득 차 제 나라의 현실을 분석하고 난국을 타개할 줄 아는 지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노예로 전락한 이들에게 자기 역사와 운명을 개척해 나가라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제 나라의 말과 글, 역사의 소중함을 깨달아 한글 전용과 국사 교육을 해왔는데, 어느새 제 나라 역사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한글 전용 정책도 사실상 무너졌다.

IMF 이후 정부와 공기업, 대기업들은 앞 다퉈 영어 이름 짓기에 열을 올리고 이를 알리기 위해 막대한 홍보비를 쓰고 있다. 이런 사례를 일일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지난 글에서 이중 국적 허용론의 속셈을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영어병(病)은 극소수 대기업의 필요와 한국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몰역사 의식과 출세 지상주의적 자세가 결합되면서 다시 자발적으로 사대주의가 횡행하던 조선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징표이다. 요새는 유치원에서부터 영어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고 영어로 인사하는게 선진국민이 되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듯 여긴다.

이 현상을 방치하면 우리말과 글은 점점 밀려나 국한문 혼용론에 이어 영어 공용화로 현실화될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경제력이 성장해도 새로운 문화적 식민지가 되고 말터이니 무슨 의미가 있는가.

따라서 우선 우리들이 힘을 모아야 될 일은 첫째,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만들어 기념하는 일에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가는 것이다. 주5일제를 도입하면서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었다.

둘째, 정부와 공기업에서 한글 전용 정책을 철저하게 시행하도록 하고 위반 시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셋째, 법률 용어를 비롯한 전문 용어의 한글화를 적극 추진하고 최신 과학 용어나 의학 등 분야에서 새로운 용어를 즉각 한글화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각급 정부 기관과 언론, 전문단체 등이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나 심지어 중국조차 자국화에 앞장서고 있는데, 건국 60주년이 넘도록 언어와 용어의 자국화를 추진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이다.

넷째,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한글학회를 적극 육성해 한글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힘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한글기념관도 만들어 전 국민의 교육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한글이 현존 언어 중에서 가장 표현하기 쉽고 구성이 과학적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만큼 한글 사용을 문자가 없는 종족들에게 권장하고 교육해가는 사업에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만들어야

한 나라의 이름은 어거지로 만든다고 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과 역사적 전통, 우리만의 특색, 과학 기술과 문화 예술이 발전할 때 전 세계에 떨칠 수 있다. 한글은 한국인이 가진 가장 값진 자산이며 한국인임을 확인시켜주는 원천이다.

한글을 아끼는 모든 이들이여,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사업에 모든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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