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길 초대전 ‘숨-안개를 보이다’

   

민병길의 사진은 ‘숨’이라는 어휘로 압축된다. 그는 지난 20여 년을 숨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해 왔거니와, 숨은 그의 사진을 관류하고 있는 주제이자 그의 사진을 특징짓는 개념이다. 숨은 생명이다. ‘숨을 죽이고 민병길의 사진을 감상한다’와 같은 문장에서의 숨은 생명, 목숨, 진정, 자기, 정신 등이 복합된 개념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숨은 사람이나 동물이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이나 과정을 뜻한다. 반면 민병길의 숨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나누지 않고 존재론적이거나 비존재론적이거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본질적 개념이다. 민병길은 그간 숨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생산했다. 초기의 그는 인간과 사물이 존재하는 터전인 땅에 주목했다. 땅을 근거로 살아가는 풀이나 초목 등에서 출발해 안개, 물, 바람, 하늘 등으로 사진의 주제를 확산시켜 나갔는데 그 주제는 숨이라는 단 하나의 우주적 원심으로 환원한다.

그는 전통적인 사진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로 정평이 있다. 거의 고전적인 카메라와 흑백 필름으로 작업을 하며, 자신의 암실에서 현상을 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화를 한다. 사진예술에서 카메라나 촬영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현상과 인화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그와 같은 고단한 작업을 하면서 자신만의 미감(美感)을 창조해 낸다. 디지털 사진의 기계적 금속성과는 다른 인간의 따스한 정감과 깊은 사상을 표현하기에는 전통적 사진기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제를 직접 만드는가 하면 도자기에 인화작업을 하거나 피그민트의 안료 착색 기법을 구사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흑백사진의 묘미인 회색의 톤과 층위를 최대한 표현하면서도 디테일을 잃지 않음은 물론이고 원근의 회화적 처리를 통해 시각예술의 핵심을 살려낸다. 이처럼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해체됐다고 단언하는 민병길의 작품은 수묵화적인 기품이 있다. 한편 그가 그리는 숨은, 안개에 쌓인 몽상처럼 보이는데 그 어느 경우에도 리얼리즘을 벗어나지 않는다.   

민병길은 사진예술이 과학기술의 발명품임을 인정하지만, 카메라라는 기계를 마음의 눈으로 치환해 자신만이 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표현해 낸다. 그런 점에서 발터 벤야민이 예단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에 반역을 시도하는 반항적 작가다. 그에게 사진은 복제예술이 아니고, 단 한 장의 유일한 아우라를 가진 개별 작품이다. 이를 위해 피사체와 친숙할 때만 셔터를 누르는 완고함, 고전적이라고 해야 할 특별한 현상기법, 화학자적 엄정성을 가진 특별한 인화방식, 질감의 미세한 차이를 담아내는 자기만의 인화지 사용 등 장인의 엄숙함이 반영된 고독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 미학은 사진 한 장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겠다는 야심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 야심은 섬세한 시각과 따스한 정감이 어우러진 절제된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민병길,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사진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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