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을 보면 난데없이 이념과 연좌제(連坐制) 논쟁이 한창이다.

한 국민 여배우의 선행을 이념 및 연좌제와 연계해 비판한 것이 불씨가 돼 사회의 논객과 네티즌들이 한마디씩하고 있다.

연좌제란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그 범죄의 연대책임을 지우는 제도이다.

때로는 친족관계가 아닌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우기도 한다. 이러한 연좌제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형법의 특징으로 역사적으로는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진(秦)나라에서 삼족의 연좌형 등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연좌제적인 형벌이 있었다.

갑신정변으로 김옥균이 대역 죄인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10년 옥살이 끝에 교살당하고 어머니와 누이는 음독 자결했고, 동생은 옥사했으며, 부인은 관비가 됐다고 한다.

일가 몰살의 가공할 연좌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제도가 고종 31년 1894년 법적으로 폐지됐으나 남북분단과 이념 논쟁에 의해 잔존하다가 1980년 제8차 헌법 개정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연좌제의 가장 커다란 폐해는 개인의 삶이 개인이 아닌 가족이나 제3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 있다. 제도적으로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연좌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은행권에서 가계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을 없애기로 했지만 저축은행과 지역농협 등 제2금융권에서 연대보증은 아직도 존재한다.

금융권의 연대보증제도가 없어지기 이전인 5월말 현재 은행권에 연대보증을 선 사람이 6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대보증은 인적보증으로 연좌제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근대적인 사회에서 반역자나 범죄자의 삼족을 멸하듯 보증을 잘 못서면 삼대가 망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카드 회사나 사채업자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아들과 딸의 카드빚을 부모에게 전가시키고 친구의 신용불량이 선배와 후배로 이전돼 도미노 식으로 주위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의 신용카드가 연체되면 다른 신용카드마저 사용하지 못하는 신용카드 연좌제가 시행되고 있다.  

인터넷은 연좌제의 망령들이 판을 치는 가상공간이다. 인터넷에서는 하나의 잘못이 천이 돼서 돌아온다. 없던 잘못도 만들고 시나리오가 돼서 관련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과거의 연좌제는 당사자와 후손이 처벌 대상이 됐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선조와 후대 모두가 여론의 재판이 되고 관련 기관도 인터넷을 폐쇄해야 할 정도로 네티즌의 공격을 당하게 된다.

네트워크와 상호연계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연좌제적인 비난과 욕설은 오늘날 일상화되고 있다.

개똥녀 사건이나 일전 올림픽에서 왕기춘 선수가 은메달 딴 것과 관련해 한 여대생이 왕 선수의 미니홈피에 “이원희가 나갔으면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는 욕설을 남기자, 네티즌들은 그 여대생의 실명과 사진, 주소, 주민번호 공개는 물론 그 가족과 친구들의 개인정보까지 추적해 인터넷상에 유포하면서 마녀사냥 식으로 사이버 폭력을 가했다.

해방 후 동족상잔과 이념의 갈등 속에서 연좌제의 불이익을 받아온 우리가 새로운 정보사회의 연좌제에 고통을 받고 있는 데 전근대적 이념의 연좌제를 다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정보사회의 편리한 도구인 인터넷을 사용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보사회의 현대판 연좌제는 제도에 의해 폐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올바른 정보윤리에 의해서만 폐지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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