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결혼자금 등 마구잡이 끌어다 가입
원금까지 까먹고 해지도 어려워 냉가슴

펀드가입자들이 잔인한 2008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펀드가입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펀드 1개 정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 취급받을 정도로 펀드가입은 우리사회의 트랜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미국 발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펀드가입자들은 원금의 20∼30%를 까먹거나 반토막이 나면서 속을 끓이고 있다. 퇴직금은 물론 정기예금까지 깨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돈이 불어날 것으로 철썩 같이 믿었지만 원금은 휴지조각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충북 청주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50대 A씨는 보름전 모 증권사에 가입한 10억원 상당의 펀드를 부랴부랴 해약했다.

A씨가 받은 돈은 4억5천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반토막 난 펀드만 생각하면 화병이 나 미칠 지경이다. 증권사 직원들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물론 펀드에 가입한 것은 내 책임이 크지만 펀드에 가입하면 돈을 저절로 불어난다고 가입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3년 전 펀드에 가입할 때는 돈을 불려 사업규모를 더 키우려다 주식시장이 곤두박질하면서 이 같은 낭패를 당했다.

농협중앙회 모 지역 지점장을 맡고 있는 K씨(55)도 펀드에 가입했다 5천만원을 날렸다. 그는 가족들에게 펀드 가입사실을 말도 못하고 있다. 이 지점장은 “펀드가입을 짐작한 부인이‘당신은 펀드 가입한 것이 없느냐’고 물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토로했다.

그는 “펀드가입 사실에 대해 터 놓고 이야기는 못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안다”면서 “직원 대부분이 적잖은 손실을 입은 채 속을 끓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결혼한 모 방송국 여성 아나운서 B씨는 “결혼자금을 불리기 위해 유명 증권사 펀드에 가입, 매월 30만원씩 자동이체 시켰다. 그러나 결혼자금 활용은커녕 곤두박질치는 주식시장에선 해약하기 조차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해약을 하자니 손실이 크고 해약을 안 하자니 펀드금액이 더 줄 까봐 한 걱정이다. 너무 손실이 커 해약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대전 모 초등학교 교사인 C씨(56)도 “딸 결혼을 시키기 위해 2년 전부터 유명 증권사 인사이트 펀드에 거액을 맡겼다가 30% 넘는 손실을 입었다”며 “이 돈도 남편 몰래 가입했는데 이를 알까봐 걱정이다”고 전했다.

그는 집단소송 카페에 등록, 민·형사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시중 은행원 D씨(42)는 부모와 형부의 퇴직금 등 주변 사람들의 돈을 모조리 펀드에 가입시켰다가 쪽박을 찬 신세가 됐다.

증권사 지점장인 E씨(43)는 “펀드에 가입했다 손해를 입은 고객들의 항의 때문에 직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며 “고객들이 ‘펀드 손실을 물어내라’며 항의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고객들로부터 협박까지 당할 때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처럼 우리사회에는 펀드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최근 불안한 금융시장이 이어지면서 주가가 급전직하(急轉直下), 덩달아 손실도 엄청나다. 펀드 가입자들이 까먹은 원금은 고사하고 해지마저 쉽지 않아 가슴이 숯덩이가 된 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요즘 화두는 펀드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